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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리에 시 한 줄

한 번의 생에 여러 번 죽는다

노바리 2021. 4. 28. 20:29

가을에

숲이 누렇게 변할 때마다 나는 죽는다

한번의 생에 여러 번 죽는 것은

내게 모든 것 가운데 가장 힘든 일!

봄에

새로 돋은 풀이 향기를 발할 즈음

늙은 암소가 힘겨워 쓰러질 때마다 나는 죽는다!

차가운 한풍이 사납게 울부짖고

어린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쓰러질 때마다

나는 죽는다!

잠이 덜 깬 몽골에서 멀리 떨어진

태평양 어딘가에서 배가 침몰할 때

얼굴 모르는 어느 누군가가, 어느 곳에서

가슴을 치며 서 있을 때

지도에 이름이 없는

더해도 더해지지 않고, 없애도 없애지지 않는

한 작은 섬에 땅이 흔들릴 때

더욱이ㅡ

먼 외딴 초원의 고요를

엽총 소리가 놀라게 할 때

나는 죽는다!

한번의 생에 여러 번 죽는 것은

내게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은

한 번의 생에

오직 한 번 죽는 사람들과

날마다 함께 살아가는

너무도 끔찍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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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딘수렌 우리앙카이 ; <낙타처럼 울 수 있음에>(이안나 옮김, 아시아)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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