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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리에 시 한 줄

평화 -고은

노바리 2011. 1. 1. 15:47

평화

 

인간이 가장 부끄러워할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을

내 마음속

아라비아 사막의 뜨거운 모래 위에 쓴다

평화! 라고

몇천 년 이전

전혀 다른 시대의 낯선 글자로 쓴다

내 몸속

아프리카 오지 위의 캄캄한 공중에 쓴다

 

여기

한반도 휴전선 언저리

방금 날아간 새를 놓친 뒤

 

몇십 년 동안 녹슨 철모를 어루만지며

평화!라고

평화!라고

다리 하나라도 좋아라

그 다리로 목발 짚고 쓴다

모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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