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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의 속내가 궁금할 때 -『황제 신화』 본문
베이징올림픽이 개막한 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4백억 달러가 넘게 든 초호화 올림픽은 개막식부터 전 세계 40억 명의 눈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중국 정부가 천문학적인 돈을 들인 보람이 있는 것 같지요?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무성한 뒷말들은 처음의 감동을 무색케 합니다. 가슴을 뛰게 한 불꽃놀이도, 마음을 울린 어린이의 노랫소리도 다 가짜라니 입맛이 씁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에선 수백만 명의 철거민이 발생했고 백만 명에 이르는 농민공이 도시를 떠났습니다.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중국 정부가 실시한 이 정책들은, 사실 20년 전 한국 정부가 상계동 등지에서 이미 실천한 바 있습니다. 외국에 부끄러워 자국민을 내모는 것이나, “뚱뚱하고 이가 못생긴 아이” 대신 오뚝한 코에 눈이 큰 아이에게 립싱크를 시키는 것이나 다 같은 맥락입니다.
더불어, 방송 3사가 모조리 올림픽 중계만 하고, 사상 처음으로 대표선수단 퍼레이드를 하겠다는 우리의 발상도 그리 건전하게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일주일 넘게 못 봐서 심사가 꼬인 탓도 있지만, 베이징 곳곳에서 드러나는 중화민족주의나 “대~한민국”을 외치는 이 사회의 스포츠민족주의나 비슷한 정신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신화학자 김선자가 쓴 『황제(黃帝) 신화』는 이 배타적 정신이 얼마나 위험한 미래를 꿈꾸는지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 책에는 중국이 중원(中原)을 무대로 진행 중인 역사 고고 프로젝트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직접 중원을 답사한 저자는 그곳에서 신화를 역사로 만들려는 중국 정부의 다양한 시도를 목격합니다.
산을 통째로 깎아 만든 염제(炎帝)와 황제 상, 가상의 황제 무덤인 황제고리, 서안의 황제 발자국 밟기 축제… 이 모든 것들이 겨누는 과녁은 하나입니다. 중국사의 기원을 천 년 더 끌어올려,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중화문명 아래서 56개 민족이 하나가 되자는 거지요. 그걸 위해 중국은 지난 십수 년간 하상주 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 중화문명 탐원(探源)공정*을 벌였고(우리가 문제 삼는 동북공정 역시 그 일환입니다),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며 올림픽을 유치했습니다.
이쯤에서 올림픽 스타디움을 수놓은 개막식의 장관들을 떠올리면 그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중국의 오랜 역사와 문명을 과시하고 중화의 깃발 아래 모든 소수민족이 하나가 되는 것, 과히 올림픽 공정이라 할 만한 기획이지요. 중국신화를 연구하는 김선자가 어찌 보면 제 분야도 아닌 역사 프로젝트에 주목한 것은 이 모든 기획의 출발점에 ‘황제 신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皇帝)가 아니라, 삼황오제의 하나이며 중화민족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황제(黃帝) 말입니다.
공자는 “황제는 사람인가요, 아닌가요?”라고 묻는 제자에게 “황제의 시대는 참으로 오래되었는데 너는 왜 그런 걸 묻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리고 『상서(尙書)』를 정리하면서 요순 이전 시대는 제외했습니다. 사적(史蹟)이 없으니 역사에 넣을 수 없다고 봤던 거지요. 하지만 공자를 존경한 사마천은 이 점에서 스승을 배반합니다.『사기』의 「오제본기(五帝本紀」맨 처음에 황제를 위치시킨 겁니다. 신화 속 인물인 황제가 중국 역사의 시조가 된 셈인데, 이는 한(漢) 왕조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대일통(大一統) 사관(史觀)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사마천의 대일통 사관은 이후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납니다. 열강의 침입으로 위태롭던 시대에 지식인들은 다시금 황제를 불러냅니다. 황제의 후손인 한족이 아시아 문명을 이룬 주인공이라고 노래한 양계초, 황제의 이름으로 정통성을 추구한 손문, 직접 제문까지 써서 황제릉에 제사한 모택동. 저자는 민족을 지키기 위해 서슴없이 황제의 아들을 자처한 이들에게서 신중화주의의 뿌리를 봅니다.
이 책은 이들의 저항적 민족주의가 어떻게 패권적 애국주의로 변질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화가 어떻게 역사의 ‘독’으로 변하는지, 꼼꼼하게 추적합니다. 다행한 것은 이들과 맥을 달리하는 흐름이 중국 학계 내부에서 면면히 이어져왔다는 점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고힐강입니다.
1928년 고힐강은 삼황오제 시대의 역사는 모두 가짜라고 선언합니다. 그는 중국 고대에는 단일민족 개념 같은 건 없었으며, 수평적이던 각 종족의 신들이 황제를 정점으로 한 수직적 계보로 묶이게 된 것은 정치 이데올로기가 작동한 탓이라고 비판합니다. 이런 폭탄선언을 한 고힐강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주은래를 비롯한 당 중앙은 그의 ‘학술’을 인정하고 중시합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태도에 변화가 생깁니다. 중국이 세계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던 시기, 인터넷을 무대로 극단적 애국주의가 득세하고 고힐강의 사관은 역사 허무주의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국가적 지원 아래 역사기원 밀어올리기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는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그리고 ‘이어도’가 자국 영토라느니, ‘단오’는 중국 전통인데 한국이 빼앗았다느니 하는 주장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베이징올림픽은 화려한 중화문명의 깃발 아래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고 강대국으로 우뚝 서려는 중국의 꿈을 보여줍니다.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화려하기를 꿈꾸는 그들의 욕망은 이웃인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문제는 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인데, 중국보다 더 많은 금메달을 따서 극복할 수 있는 거라면 태릉선수촌을 두 배로 키우고 체육 예산을 네 배쯤 늘리면 되겠지만 글쎄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국의 패권적 민족주의에 “대~한민국”을 외치는 똑같은 민족주의로 대응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겁니다. 황제릉에 대항해 단군릉을 만든다고 한반도에 미래가 열릴까요? 바야흐로 강대국 패권주의를 모방하며 뒤쫓을 것인지, 패권주의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할 것인지,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상주 단대공정: 1996년부터 2000년까지 5년간에 걸쳐, 기원전 841년에서 시작되던 중국사 연대표를 새롭게 작성한 프로젝트. 연구 결과, 하 왕조의 연대는 기원전 2070년으로, 하와 상 왕조의 경계는 기원전 1600년, 상과 주 왕조의 경계는 기원전 1046년으로 확정되었다.
*중화문명 탐원공정: 2001년 시작되어 현재 제11차 5개년 계획(2006-2010)이 진행 중인 탐원공정은, 요․순․우, 황제까지 역사 시대에 넣어서 중국 문명의 기원을 천 년 더 확장시키려는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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