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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멀미가 날 때

노바리 2008. 5. 24. 12:18
 서경식.김상봉,『만남』


..............사람과의 만남에 멀미를 느끼는 K에게 처방전을 보내려고 합니다. 서경식과 김상봉의 『만남』입니다.


서경식의 글을 읽으면 발이 차가워지고 가슴이 서늘해져서 이불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베갯잇을 적시는 것이야 말할 것도 없고요. 누구는 그를 두고 “면도날 같은 글”을 쓴다고 하던데 저는 “이불을 덮고 읽어야 하는 글”을 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허나 무어라 말하든 서경식의 글이 가진 힘에 대해선 이론이 없을 겁니다. 그에 비하면 김상봉에 대해선 그저 고적할 뿐이라 해도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김상봉을 처음 만난 건 그가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문예아카데미에서 철학 강의를 할 때였습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중 나르시스 신화를 함께 읽었는데, 그 짧은 이야기에서 타자를 수용한 적 없는 서구철학의 ‘홀로주체성’을 끌어내는 열강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뒤 그가 쓴 『나르시스의 꿈』을 읽으며 다시 감동했습니다. 역사가 조금이라도 진보한다면 그건 슬픔의 힘 때문이라고 믿고 있던 제게, 김상봉이 천착하는 슬픔의 철학은 깊은 공감을 주었습니다. 허나 아쉽게도 한국 학계에서 그는 외로워 보였습니다. 서구의 철학과 개념들을 수입하는 데 부지런한 이론 풍토에서 김상봉은 섬처럼 홀로 떠 있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눈 밝은 편집자 덕분에 그와 서경식이 드디어 만났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서경식, 김상봉 두 사람에게도 다행이고, 남의 개념이나 읊조리는 한국 학계에도 다행이고, 사상과 문화의 중요성을 다 잊은 듯한 부박한 세태에도 다행이고, 그리고 사람과의 만남이 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이제는 묻지도 않는 외곬의 영혼들에게도 다행입니다. 작년 봄부터 아홉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만남』은, 기질도 환경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엇갈림과 부딪침을 담은 대담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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