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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죽음을 고민합시다! -2016.1.2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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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죽음을 고민합시다! -2016.1.20

노바리 2016. 10. 23. 12:19



지난 1월 8일 임종을 앞둔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호스피스 완화의료와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소생하지 못할 줄 알면서 죽음의 시기만 늦추는 연명의료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공감해온 터라 반대의 목소리는 크지 않습니다. 다만 환자 본인의 의사를 직접 확인할 수 없을 때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에 따라 허용하되 가족 중 이견이 있으면 금지한다’는 규정을 놓고, 한편에서는 너무 느슨해서 현대판 고려장이 될 거라고 비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실상 가족 전체가 합의해야 하니 무의미한 처치가 계속될 거라고 우려합니다.


환자가 평소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했고 가족 모두가 잘 알아 그대로 따른다면 문제가 없겠지요. 하지만 가족 사이에 대화도 부족하고 특히 죽음과 같은 주제는 될수록 입에 올리지 않는 현실에서 갑자기 이런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면 갈등이 생기기 쉽습니다. 하버드 의대 교수인 아툴 가완디의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보면, 한국보다 자유롭게 대화하는 미국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려움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큰 수술을 앞둔 가족들은 환자와 ‘만약의 경우’를 의논하기보다는 가벼운 얘기로 긴장을 풀려 하는데, 가완디는 그 이유를 “직면하기 어려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최악의 사태를 거론하는 순간 가족들은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당사자는 엄청난 충격을 받기 쉬우니까요. 자칫 잘못하면 서로의 믿음이 깨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고요.


가족이라 감정적이 되기 쉬운 탓도 있지만 가완디는 의사 역시 이런 대화가 어렵고 서툴기는 마찬가지라고 지적합니다. 말기환자와 상담할 때 대개의 의사들은 어떤 치료를 받을 건지 선택하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중요한 것은 심폐소생술을 받느냐 마느냐의 선택이 아니라 불안감에 압도된 사람들이 잘 대처하도록 돕는 것이며, 그러려면 시간을 들여 당사자의 말을 잘 듣고 의사가 아는 것을 이야기해서 앞으로의 일에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현대의 의료시스템은 환자를 철저히 소외시킵니다. 내 돈으로 내 몸을 치료하는 것인데도 내 의견은 무시되기 일쑤며, 생각지도 못한 검사와 치료를 받느라 육체적, 경제적으로 고통을 겪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번에 제정된 법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연명의료를 중단할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환자 역시 의료현장의 한 주체이며 따라서 의료진이 환자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듯 환자도 자신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의료진은 충실한 설명을 통해 환자의 선택을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의사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가완디가 전작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에서 보여주었듯이, 최고의 의사가 최선을 다해도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아직 죽음에 대해 모릅니다. 수많은 죽음을 지켜본 의사도 자신이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는 엄청난 충격과 혼란을 겪습니다. 일본의 의사 니시카와는 암이 재발된 것을 알았을 때 “이 고통과 슬픔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절망감을 토로합니다. 그리고 이 절망을 통해 비로소 생명을 연장하는 데 매달린 기존 의학의 문제를 깨닫고 ‘죽음의 의학’을 고민하기 시작합니다(<인간답게 죽는다는 것>에서). 가완디 역시 의사인 아버지가 척수암으로 고통 받는 것을 보며, 갑자기 닥치는 ‘노병사(老病死)의 무게를 실감하고 노인병 전문가와 호스피스의 중요성을 절감합니다.


아무리 운동하고 조심해도 늙고 병들고 죽는 운명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절망스럽지요. 하지만 가완디와 니시카와가 보여주듯이 그 절망이 새로운 삶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몸은 건강을 추구하되 정신은 건강 이후를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운명에 대해, 이 운명을 감당하도록 도와준 세상에 대해 책임과 권리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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