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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숨은 책방
‘묻지마’를 묻는다 본문
지난 17일 일어난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의 파장이 큽니다. 솔직히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충격을 받긴 했지만 새삼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여성이 끔찍한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걸 한두 번 본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지하철역 입구에 하나둘 추모의 포스트잇이 붙고 살해당한 이를 기리는 여성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더군요. ‘나는 운이 좋았을 뿐 내가 당신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며 희생자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추모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여성이 낯선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것은 숱하게 봐왔지만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여성들이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그녀가 하지 못한 말을 대신하는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끔찍한 뉴스에 눈을 감고 귀를 막고 한숨만 내쉰 저와 달리 거리로 나가 슬픔과 분노의 연대를 일궈낸 젊은 여성들을 보며 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폭력에 길들어져 있었는지 새삼 깨달았지요.
그런데 놀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자라서 죽었다’며 두려움과 분노를 토로하는 여성들에게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 ‘남성혐오를 부추겨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가해지고,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경찰청장이 나서서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 정신질환 범죄라고 규정한 겁니다. 피의자가 범행 현장에서 여섯 명의 남성을 그냥 보낸 뒤 일곱 번째로 들어온 여성을 골라 죽였고, “평소 여자들이 무시해서” 죽였다고 살해동기를 밝혔는데도, 왜 ‘여자라서’ 죽었다고 말하면 안 되고 ‘묻지마 범죄’라고 해야 하는지 놀랍고 이상했습니다.
더구나 경찰과 정부 여당이 문제는 여성혐오가 아니라 범죄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과 남녀 공용화장실이라며, 정신질환자들의 강제입원과 여성안심 화장실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데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여성혐오 범죄’가 남녀 대결을 부추기는 성 차별적 언사라고 하면서 특정 질병을 앓는 환자와 공용화장실을 이용하는 남성들 전부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차별을 허용한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이런 식의 접근법은 안전한 사회는커녕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뿐인데 말이지요.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지만, 정말 논점이 되어야 하는 것은 여성이든 정신질환자든 누군가를 차별의 대상으로 삼고 배제하는 사회 풍토입니다. 특히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이 이런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얼마 전 부산에서 일어난 각목 폭행 때도 그랬지만,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언론에선 조사가 다 끝나기도 전에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살인, 묻지마 폭행이 발생했다는 식으로 보도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신질환자에 대한 혐오와 공포가 커지고 잠재적 범죄자인 이들을 격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진상을 파악하려면 이 사건들의 피의자가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사실은 물론, 그들이 모두 가난하게 홀로 사는 남성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피해자가 하나같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정신질환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사회 안전망이 없는 이 사회에서 각자도생의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은 불안에 시달리고 타인을 지옥으로 여깁니다. 조금이라도 가진 이들은 가진 것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담을 쌓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내몰린 사람들은 원한에 사로잡혀 복수를 꿈꿉니다.
그리고 처음 본 여성에게 그 복수의 칼날을, 분노의 각목을 휘둘렀습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만만해 보여서든, 여성이 자신을 무시하는 데 화가 나서든, 어쨌든 그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것이 아니라 ‘여성’을 택해 범죄를 저질렀고, 많은 여성들이 ‘여자라서 죽었고 죽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믿음을 망상으로 치부한다고 불안한 현실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서로의 생각을 문제 삼기 전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유를 물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걸 질병 탓으로 돌려 ‘묻지마’ 피해자를 양산하는 대신, 여성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를 묻고, 정신질환자가 늘어나고 병적 망상이 극단화되는 이유를 묻고, 이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함께 묻는 것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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