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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숨은 책방
연쇄③ 그 많던 앵무새는 다 어디로 갔을까? 본문
토니 주니퍼, 이종훈 옮김, <스픽스의 앵무새>, 서해문집, 2002
첫 번째 연쇄가 주인공의 이름에서, 두 번째 연쇄가 작가를 매개로 해서 일어났다면, 세 번째는 작품의 키워드가 연쇄의 고리가 된 경우입니다. 다시 말해, 지난번에 다룬 <플로베르의 앵무새>에서 ‘앵무새’가 연쇄를 일으킨 것이지요. 사실 앵무새가 등장하는 책은 한둘이 아닙니다. 제목에 앵무새가 나오는 책으로는 가장 유명할 듯싶은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1)를 비롯해서, 의사이자 작가인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1899년에 발표한 ‘그로테스크’ 단막극 <초록 앵무새>, 그리고 앵무새, 아니 동물 지성(知性)에 대한 통념을 바꿔놓은 똑똑한 앵무새 알렉스의 이야기를 담은 <알렉스와 나>, 멸종 위기의 주홍 마코앵무새를 내세워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고발한 <주홍 마코앵무새의 마지막 비상>2)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열거하기가 숨찰 정도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많은 책이 있어도 ‘앵무새!’ 하면 나는 <스픽스의 앵무새>라는 책이 맨 먼저 떠오릅니다. 토니 주니퍼라는 환경운동가가 쓴 이 책은 2005년 초판 2천부가 출간된 뒤 내가 알기로 더 찍은 적이 없습니다. 소수의 ‘훌륭한’ 분들이 정말 좋은 책이라고 찬사를 보내긴 했으나 그뿐,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열혈 독서가도 아마 모르고 지나쳤을 만큼 판매고도 언론의 조명도 미미하기만 했던 책이지요.
그런데 왜 그런 책을 연쇄독서의 리스트에 올리느냐고요? 그건 이 책이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시절 내가 기획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산더미 같이 쌓인 해외 리뷰들 속에서 이 책의 서평과 발췌된 본문을 읽고 감동하여 선뜻 출판 계약을 맺은 것이 바로 나라는 얘기지요. 그러니 여러 앵무새들 중 유독 ‘스픽스의 앵무새’에 마음이 갈 수밖에요.
물론 단지 이런 개인적인 인연 때문에 몇 해가 지난 지금 이 책을 들추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출판을 결정한 것은 나지만 교정 교열 등 실무를 진행한 것은 다른 편집자이기 때문에, 판매 부진의 책임을 던 만큼 책에 대한 애정도 줄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번역되어 나온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러다 이번에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읽는데 자꾸 이 책이 떠오르더군요. 마치 다른 앵무새는 다 봐주면서 왜 네가 고른 나는 거들떠도 안 보냐고 타박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는데, 오래 전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이 새삼 떠오르면서, 이렇게 좋은 책을 내가 골랐구나 하는 뿌듯함과 함께 이런 책을 나 몰라라 했다니 하는 뒤늦은 죄책감이 가슴을 쳤습니다.
<스픽스의 앵무새>는 ‘세상 하나뿐인 앵무새 살리기’라는 부제(원서의 부제는 ‘The Race to Save the World's Rarest Bird’)처럼, 자연에 살아남은 단 한 마리의 앵무새 종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스픽스의 앵무새’로 불리는 이 새는 1819년 바이에른 출신의 과학자 스픽스가 브라질 탐험에서 처음 발견한 뒤 급속히 멸종되어 간 비운의 앵무새입니다. 정식 명칭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시아노프시타 스픽시, 영어식으로는 스픽스유리금강앵무(Spix's Macaw)로 불리는데, 아마도 앵무새 입장에서는 자신을 박제하고 유럽에 소개해서 멸종의 원인을 제공한 스픽스의 이름으로 불리는 게 못마땅할 것입니다.
꼬리가 길고 몸집이 작은 이 파란색 앵무새는 유럽에 소개되자마자 부유한 조류 수집가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아름다운 생김새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희귀하다는 점이 그들을 자극했지요. 스픽스가 처음 이 새를 잡은 뒤 84년이 지날 동안 누구도 야생에서 이 파란색 앵무새를 보지 못했으니까요. 1920년대에 이미 희귀조로 분류될 만큼 그 수가 적다는 사실은, 스픽스유리금강앵무가 살아남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습니다. 수집가들은 이 희귀조를 갖기 위해 더욱 열을 올렸고, 새의 가격은 암시장에서 4만 달러를 호가할 만큼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포획자들을 유혹했습니다.
1987년 크리스마스 이브, 브라질 북동부 내륙의 삼림지대 카팅가에 사륜구동차가 나타났습니다. 몇 달 전 비슷한 소리가 들린 뒤 수컷 한 마리가 붙들려갔기 때문에 한 쌍의 파란색 앵무새는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깊은 밤, 그들은 둥지 안에서 꼼짝 않고 갓 낳은 세 개의 알을 지켰습니다.
이윽고 둥지 안으로 뭔가가 들어왔습니다. 놀란 암컷이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물이 몸을 덮쳤습니다. 암컷이 몸부림치는 사이 수컷은 간신히 몸을 피했지만, 부화를 기다리던 알들은 밀렵꾼의 우악스런 손아귀에서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밀렵꾼들은 잠시 실망했지만 곧 값비싼 어미 새를 잡은 기쁨에 들떠 숲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몰랐지만 그날의 사냥으로 이제 카팅가에는 단 한 마리의 스픽스유리금강앵무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도망간 수컷이 바로 그 최후의 한 마리였지요.
<스픽스의 앵무새>는 이렇듯 처절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차례차례 포획되어 세계의 수집가들에게 팔려가는 앵무새,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마리. 이 한 마리는 암컷과 새끼와 동료를 모두 잃고 그 뒤 13년을 홀로 살았습니다. 상상해보세요. 모든 인간이 죽고 오직 나 하나만이 살아 있다고. 그 고독을, 홀로 견뎌야 하는 두려움을 당신은 견딜 수 있나요? 혹시 새는 섬세한 감정이나 지능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 같은 인간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의 제3장을 읽기 바랍니다. 앵무새가 인간의 사랑을 받고 그로 인해 멸종 위기까지 겪게 된 이유가 바로 사람과 닮았다는 점 때문임을 알게 될 겁니다.
앵무새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끈 이유는, 그 새가 사람처럼 물건을 조작하고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전혀 다른 종이 사람과 닮았다고 열광하면서도 정작 같은 종인 사람끼리는 소통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하는 것이 인간인 셈이지요. 같은 사람과는 관계를 맺지 못한 채 다른 동물에게서 사람의 모습을 찾는 우스운 휴머니즘인데, 그러고 보면 애완동물이든 반려동물이든 결국은 인간중심의 사랑이고 배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픽스유리금강앵무가 지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도 인간의 지나친 사랑 때문이었음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지요.
물론 스픽스유리금강앵무를 비롯한 수많은 앵무새 종이 멸종 위기를 맞은 데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열대우림의 파괴도 큰 몫을 차지합니다. 브루스 바콧의 <주홍 마코앵무새의 마지막 비상>은 바로 그 문제를 다룬 책으로, 대형 댐 건설로 인해 앵무새를 비롯한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지인 숲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앵무새)수집가들은 자신들의 소유욕을 탓하기보다 숲을 벌목하는 빈농들이나 개발도상국 정부들을 비난하는 데에 열중”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환경단체인 ‘지구의 벗’의 활동가이며 특히 앵무새의 멸종을 막는 데 힘써온 토니 주니퍼는, 앵무새가 지금처럼 위험에 빠진 것은 숲의 파괴만이 아니라 부유한 수집가들의 탐욕 때문이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스픽스유리금강앵무의 멸종을 막기 위한 노력이 구체화되었을 때 수집가들은 이 국제적인 노력을 자신들의 앵무새를 번식하여 재산을 늘리는 데 이용했을 뿐, 그들을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데는 조금도 협조하지 않았고 결국 이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앵무새 사랑’을 내세워 자신의 탐욕을 추구하는 수집가들에 대한 주니퍼의 공격이 결코 지나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에필로그’에서 주니퍼는 2002년 9월 제5회 국제앵무새회의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전합니다. 회의장에서 그는 스픽스유리금강앵무의 비참한 운명을 전하며 그 새의 야생복귀를 위해 개인 소장 새들을 브라질 정부에게 반환해 관리하게 하자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140여 마리의 희귀 앵무새를 키우다 구속되었던 해리 시센이란 영국인은 주니퍼를 맹비난합니다. 그는 브라질은 보호 능력이 없고, 새들을 야생에 풀어주면 사살되거나 포획될 것이며, 서식지인 숲도 파괴되고 있다고 강변합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그린 앵무새 그림을 보여주면서, 정부에 압수된 자신의 앵무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주니퍼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이기적인 성격을 띨 뿐 아니라 광적으로 좋아하는 이들의 이익에만 기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런 사랑이 고상하고 훌륭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나는 해리의 이야기를 듣고서, 인간은 스스로 옳고 정당하다고 확신하면 아무리 사실에 기반한 강력한 증거를 제시해도 생각 자체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처럼, 동물을 예뻐한다며 동물에게 인간의 생활양식을 강요하고 그걸 사랑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뜨거운 열대 숲에 사는 앵무새를 차갑고 축축한 영국에 데려다놓고 자신이 최적의 보살핌을 베풀고 있다고 믿는 해리 시센 같은 이들이지요. 불과 백여 년 만에 스픽스유리금강앵무를 비롯한 무수한 생물종들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 데는 바로 이런 인간중심주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식과 사랑과 믿음만을 신봉하는 인간의 오만과 편견 때문에 지구는 현재 ‘대멸종의 시대’를 겪고 있습니다. 과거 100년에 1종씩 멸종되던 조류는, 19~20세기 200년간 103종이 사라졌고 21세기에는 460종이 멸종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 책의 필자가 직접 참여해 10여 년 동안 전 세계를 돌며 애쓴 스픽스 앵무새 살리기 프로그램도 결코 희망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그러기에 프로그램이 좌절의 늪으로 빠져드는 과정을 전하는 책의 후반부를 읽다보면, 이런 상황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인간의 멸종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우리 종의 멸종이 인간에게는 절망이지만 지구의 뭇 생명에게는 희망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내가 그 인간의 하나인 것이 미안하고 슬프고 부끄럽습니다. 그 부끄러움을 덜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카팅가 숲에 스픽스유리금강앵무가 날아다녀야 할 텐데…… 우리네 인간은 언제나 철이 들지 그저 아득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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