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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봉변을 당했을 때 - 『블랙 라이크 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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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봉변을 당했을 때 - 『블랙 라이크 미』

노바리 2009. 7. 23. 22:39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정도의 피해로 끝나서 천만다행이지만, 이런 일이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웃을 수만도 없습니다. 원한은 고사하고 아무 인연도 없는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입니다. 돈이 많아서 경호원을 대동할 형편도 아니고, 호신술을 익히기엔 몸이 너무 무겁고, 궁리 끝에 가스총이라도 장만할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존 하우드 그리핀이 48년 전에 쓴 『블랙 라이크 미(Black like me)』라는 책 때문입니다.


1961년에 처음 출간된 이 책은 한때 “저속하고 외설적”이란 이유로 고소를 당하고 금지도서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미국 학생들의 권장도서로 꼽히는 저작입니다. 한국어판에는 원 텍스트와 함께 책이 출간된 뒤의 사연을 담은 에필로그와 발문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걸 보면 이 작은 책이 미국 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과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책은 발상부터가 충격적입니다. 작가이며 음악이론가이고 사진가이자 신학도인 그리핀은 1959년 10월 28일 밤, ‘흑인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흑인이 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하실 텐데요, 말 그대로 백인인 외모를 흑인으로 바꾸기로 한 겁니다. 그는 울렁증을 참아가며 색소 변화를 일으키는 약을 먹고, 며칠 동안 태양등 아래서 온몸을 태운 뒤 머리를 삭발하고 검은 칠까지 합니다. 결과는 대성공. 그리핀은 완벽한 흑인으로 변신하여 흑인 차별로 유명한 딥 사우스1) 지역으로 들어갑니다. 흑인이 되기로 결심한 날로부터 열흘이 지난 11월 7일 밤의 일입니다.


별별 희한한 일이 다 일어나는 21세기지만, 지금 봐도 그리핀의 시도는 놀랍습니다. 더구나 그는 세상의 눈길을 끌기 위해 깜짝쇼를 벌인 것이 아닙니다. 그는 남부 흑인들의 자살이 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본 뒤, 흑인을 자살로 내모는 현실을 알기 위해 변신을 결심했습니다. 실제 현실이 어떤지 알아야만 백인과 흑인 사이에 이해가 가능하고 변화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가 이런 생각을 한 데는 그의 남다른 경험도 한몫을 했습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고, 미 공군에 들어가 태평양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웠으며, 폭발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가 1957년 갑자기 시력을 되찾기까지 십 년 동안 시각장애인으로 살았습니다.


언뜻 보아도 파란만장한 이 경험들을 통해 그는 타자(他者)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는 타자를 만드는 사회, 타자를 배제하는 사회를 향해 말합니다. “시력을 잃은 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잃은 게 없다는 것을 이해하라. 그의 지성도, 취향도, 이상도, 존중받을 권리도, 어느 것도 잃지 않았다.” 


그가 흑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차별에 분노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인간은 그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귀한 존재라는 것, 영혼은 언제 어디서나 평등하며 그럴 권리를 가졌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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