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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달인이 되고 싶다면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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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달인이 되고 싶다면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노바리 2009. 6. 9. 16:49

.............지금도 저와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입을 닫습니다. 토론을 해서 설득할 자신도, 이길 자신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읽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잘하면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더군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코끼리는 미국의 공화당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민주당이 공화당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쓴 일종의 정치 지침서입니다. 그런데 책을 쓴 조지 레이코프는 ‘인지언어학’을 창시한 저명한 언어학자입니다. 레이코프의 스승이자 학문적 라이벌이기도 한 노엄 촘스키 역시 정치학 책을 여럿 냈지요. ‘언어학자가 웬 정치?’ 할 수도 있지만 언어의 힘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닙니다.

 

인지언어학이란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을 통해 언어의 성질을 이해하려는 학문입니다. 특히 레이코프는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은유에 주목합니다. 익숙한 은유들이 인간의 사고와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이지요. 가령 ‘시간을 절약해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같은 말을 볼까요. 레이코프는 이 말들에는 ‘시간은 돈’이라는 은유가 담겨 있으며, 그것은 서구 문명의 경험을 반영한다고 분석합니다.       


‘시간은 돈’이란 은유는 삭막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라크=사담 후세인’ ‘북한=김정일’ ‘깡패국가’ 식으로, 국가를 사람에 빗대는 은유는 다릅니다. 레이코프는 이런 은유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비판합니다. ‘사담을 막아야 한다’며 쏟아 부은 폭탄으로 죽은 것은 사담이 아니라 수십 만 명의 이라크 민간인들입니다.(그 중에는 사담 반대자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담=이라크’라는 은유는 이들의 죽음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은유가 사람을 죽이는 현실 앞에서 언어학자는 정치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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