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숨은 책방

한 대 때려주고 싶을 때 -『비밀엽서』 본문

마녀의 독서처방

한 대 때려주고 싶을 때 -『비밀엽서』

노바리 2009. 4. 28. 21:18

어이없는 일을 당하면 오히려 말문이 막힙니다. 도(道)에 관심 없다고 했다가 몇 시간 안에 죽을 거라는 저주를 들었을 때, 거스름돈 천 원 받았는데 가게 주인은 오천 원 줬다고 박박 우길 때(더구나 지갑 안에 어제 넣어둔 오천 원짜리가 있을 때), 새로 낸 책을 챙겨줬더니 네가 이런 것도 쓸 줄 아냐고 의심스런 눈길을 보낼 때, 새벽에야 집에 온 남편이 왜 안 자고 사람을 들볶느냐며 성을 낼 때,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온갖 부탁 다하던 친구가 모처럼 한 내 부탁은 들은 척도 안 할 때… 하고픈 말은 많은데 막상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자려고 누웠지만 입도 벙긋 못하고 바보같이 돌아선 자신이 떠올라 새삼 분이 납니다. 거리의 도인에게, 가게 주인에게, 의심 많은 지인에게, 적반하장 남편에게, 이기적인 친구에게 분노의 하이킥을 날립니다. 내친 김에 바닥에 바나나껍질도 놔두고 열쇠구멍에 껌도 쑤셔 넣고 한밤중에 장난전화도 겁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복수의 시나리오를 쓰는 사이 슬며시 분이 풀리고 잠이 옵니다.


때려주고 싶은 순간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럴 때 분을 푸는 비법 한두 가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겁니다. 자신의 비밀을 고백한 엽서들을 모은 『비밀엽서』, 이 책에는 남세스런 일이라 감추고 있던 이런 비법들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일테면, 남편이 먹을 수프에 ‘공포의 분비물’을 집어넣는 좀 거시기한 방법부터 과자에 욕을 써서 구워먹는 꽤 고소한 방법까지, 당장 실전에 응용하고 싶은 비법들이 눈길을 끕니다. ...............


 


귀여운 아기 사진 옆에 얌전히 적힌 글귀.

“평생 사람들은 내가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더군. 나는 늘 쉽게 잘릴 수 있는 사람이었지. 43년 만에 그 말이 이해됐고 마침내 난 그 사실을 받아들였어.”

가슴이 철렁합니다. 담담한 고백 속에 담긴 한 사람의 절망이 너무 커서 눈앞이 흐려집니다. 이 엽서를 보낸 사람이 부디 무사하기를, 남은 생애 동안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가 나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