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책읽아웃
- 황제신화
- 이덕무
- 잠 못 이루는 행성
- 하상주 단대공정
- 자비에르
- 패배는 나의 힘
- 하늘가 바다끝
- 이찬규
- 이영록
- 진실된 이야기
- 작은 변화를 위한 아름다운 선택
- 한 도서관 한 책 읽기
- 아이티
- 폴 파머
- 인공낙태
- 키 큰 소나무에게 길을 묻다
- 희망의 인문학
- 자코테
- 잠들면 안 돼
- 출산서약서
- 일년 내내 여자의 문장만 읽기로 했다
- 한평 반의 평화
- 이탁오평전
- 이오지마의 편지
- 즐거운 살인
- 주름 대처법
- 존 쿳시
- 채링크로스 84번지
- 협재해수욕장 달리책방
- Today
- Total
마녀의 숨은 책방
기술혁명보다 사람혁명이 먼저다 본문
전명산, <블록체인 거번먼트>, 알마
"블록체인은 정보를 공개하고 널리 공유함으로써 더 강력한 안전성을 획득하는 이상한 기술이다." -p.143
비트코인 열풍이다. 기술 발전엔 눈을 감다시피 하고 살아온 나도 비트코인이 뭐기에 이 야단인지 궁금해졌다. 용어 설명을 찾아보니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암호 화폐란다. 블록체인은 또 뭐지? 도서관과 서점을 돌며 제목에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들어간 책들을 섭렵하다 우연히 <블록체인 거번먼트>를 만났다. IT칼럼니스트이며 블록체인 전문가인 전명산이 쓴 책으로, 번역문이 아니어서 읽기 편하고 분량도 많지 않아 집어 들었는데, 앞의 몇 쪽을 읽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비트코인이 만들어진 것이 2008년인데 벌써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화폐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법정화폐로 사용 중이란 얘기도 놀랍고, 많은 정부들이 100여 개의 블록체인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한국에서도 2016년부터 정부기관과 서울시, 정치권 일각에서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 방안을 내놓았다는 것도 새롭다. 매일 언론 보도를 챙겨보았지만 몰랐던 사실들이다. 아마 봤어도 그 의미를 몰라 흘려버렸을 텐데 책을 읽으니 비로소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기술인지, 왜 ‘블록체인 혁명’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된다.
<블록체인 거번먼트>는 제목이 보여주듯이, 블록체인 기술이 정부와 시민 사회에 미칠 영향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저자는 블록체인이 “자산과 공공기록물 관리, 공공서비스, 정책 투표, 거버넌스 문제 해결 등 행정과 관련된 여러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최적의 기술”이라고 확언한다. 그리고 그 증거로 공공 영역에 블록체인을 활용한 각국 사례들을 제시한다. 대표적인 것이 에스토니아다.
에스토니아는 목가적인 나라인 줄만 알았으나 알고 보니 세계 최초로 전자신분증과 전자투표를 도입하고, 2001년부터 ‘엑스로드’라는 분산형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디지털 선진국이다. 엑스로드는 그동안 한 번도 다운된 적이 없고, 또 개인들이 거기 저장된 자신의 정보를 직접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안정된 시스템이어서 핀란드 등 이웃나라들이 엑스로드 프로젝트의 도입을 검토할 정도라고 한다. 인터넷 속도는 빠르지만 툭하면 다운되고 누군가 내 정보를 들여다보지 않을까 걱정하는 입장에선 부럽기 짝이 없다.
에스토니아에서 특히 놀라운 것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영주권 제도다. 50유로를 내고 영주권을 받으면 세계 어디서든 에스토니아에 회사를 설립하고 사업을 할 수 있어 최근 수도 탈린은 북유럽 스타트업계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단다. 1년도 안 돼 약 1만 명이 신청했다니, 가입비와 창업 회사들로부터의 세금 수입, 그에 따른 사회적 활력 등을 생각하면 인구 감소의 대책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책에 나온 세계의 다양한 사례들은 블록체인 기술이 정부와 사회를 개혁하는 동력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혁명적 기술은 투기의 재료로 소진되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고 사회적 가치다. 모두의 안녕보다 눈앞의 이득을 우선시하는 이 사회를 구원할 방법은 무엇일지, 비트코인을 사거나 막기 전에 이것부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
국책기관에서 내는 월간지에 리뷰를 쓰게 됐다. 원고를 보내고 한참 지난 뒤 갑자기 편집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비트코인과 관련된 내용이 정부 비판으로 읽힐 수 있어 위에서 빼라고 했다고. 미안해 어쩔 줄을 몰라한다. 문제로 지목한 두 문장을 손보는 김에 다른 어색한 부분도 고쳐서 다시 보냈다. 권한ㅇ은 없이 일만 하는 실무자를 고달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좋도록 넘어갔다. 하지만 정부 비판으로 읽힌다고 -심지어 둘 중 한 문장에서 내가 비판한 건 이번 정부가 아니었다- 삭제하라는 그 윗분의 발상엔 정말이지 신물이 난다. 정보 공개가 블록체인이라는 강한 기술을 만들었듯이 정보를 공개하고 비판에 열려 있을수록 강해지는 것이 정부인데, 그걸 알고 실천하는 것이 민주주의고 민주정부인데, 윗분들은 왜 그걸 아직도 모를까. 정권은 바뀌었지만 사람은 크게 바뀐 게 없고 민주주의는 아직 멀기만 하다.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직도 사선을 넘고 있습니다 - 주승현, <조난자들> (0) | 2018.05.04 |
---|---|
겨울엔 추리 2탄 ㅡ드디어 밀레니엄! ! (0) | 2018.02.20 |
겨울엔 추리소설 (0) | 2018.01.23 |
여운형을 읽는다 -3인 3색의 평전들 (0) | 2017.12.25 |
시험은 공평하다는 환상 (0) | 2017.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