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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연재칼럼

개헌 유감(有感) -2018.1

노바리 2018. 1. 21. 15:17

영화 <1987>을 봤습니다. 30년 전 기억들이 역사가 되어 화면에 펼쳐지는 동안 새삼스런 분노와 자괴감에 가슴이 메어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특히 호헌 철폐 독재 타도의 구호가 울려 퍼질 때는 당시의 간절한 열망이 그대로 살아나는 듯했습니다. 4.13호헌 조치가 발표되었을 때 기막히고 한심했던, 하지만 절망스럽지만은 않았던 기억도 생생하게 떠오르더군요. 독재정권이 기를 쓴다고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는 믿음 같은 것을 거리에서 확인했기 때문이었지요. 아무리 권력이 호헌을 외쳐도 국민은 이미 개헌으로 한 발을 내딛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이즈음의 개헌 논의는 사뭇 다릅니다. 정치권은 개헌으로 시끄러운데 일반 시민들은 조용합니다. 내가 개헌에 너무 무관심한가 싶어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개헌의 필요성을 잘 모르겠답니다. 87년에 그랬듯 지난 촛불 광장에서 개헌의 당위성이 공유되었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추운 겨울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간 사람들은 헌법 개정이 아니라 헌법 준수를 촉구했고, 법을 무너뜨리는 권력에게 법대로 하라는 최소한의 요구를 했으니까요.


당시 광장에서 확인한 정치개혁의 핵심은 선거법 개정이었습니다. 촛불의 주역으로 나선 십대의 정치 역량은 선거연령을 최대한 낮춰야 할 당위를 증명했고, 국민의 의사를 왜곡하는 소선거구제의 폐해는 비례대표제의 강화를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 탄핵 이후 국회에서 선거법 개정이 활발히 논의되어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지요. 그러나 개정은 실패했습니다. 기존 질서의 수혜자인 자유한국당의 반대는 예상했던 것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인권과 지방분권을 핵심으로 한 6월 개헌을 역설했습니다. 인권 강화와 권력 분산은 시대의 흐름이므로 일부 언론과 정치인이 기본권을 확대·강화하려는 시도에 사회주의 운운하며 이데올로기 공세를 펴는 것은 시대착오입니다. 하지만 인권과 분권을 위해 당장 개헌을 해야 한다거나 권력구조를 바꾸고 지방자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선뜻 동의하기 힘듭니다. 선거법도 못 고쳤는데 헌법 개정이라니 의구심도 듭니다.


며칠 전 <행복한 나라의 조건>이란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행복은 주관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인 줄 알았는데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13개국을 보니 그렇지 않더군요. 특히 우리처럼 경제적 파국을 맞았던 아이슬란드 사례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국가 부도사태에 직면했던 아이슬란드는, IMF 이후 경쟁과 불평등이 심화되어 헬조선이란 말까지 나오는 한국과 달리, 위기 이후 오히려 돈보다 공동체와 사회적 가치에 눈뜨면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유럽에서 가장 출생률이 높은 나라가 되었답니다.


위기를 딛고 이처럼 건강한 사회를 만든 비결이 뭘까요? 화산 폭발로 관광객이 급감하자 (cash)은 없어도 재(ash)는 많아요!”라고 광고했다는 유머 감각, 성평등 임금법을 최초로 도입하는 등, 9년 연속 성평등 세계 1(참고로 한국은 114)에 오른 평등 감각도 한몫했지만, 가장 큰 힘은 역시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인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4년여 간의 개헌 추진과정입니다. 시민들이 직접 구성한 국민의회로 시작해 정부와 950명의 시민이 함께한 전국포럼, 유튜브트위터페이스북 등을 통한 직접적인 의견수렴 과정은 뉴욕타임스가 세계 최초의 집단지성을 통한 개헌 작업이라 평했을 만큼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비록 개헌은 기성 정당의 반대로 좌초되었지만, 이런 과정이 있어 국민이 국가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갖게 되고, 망해가던 나라가 가장 행복한 나라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한국도 지난번 신고리 원전 토론회를 통해 시민이 참여한 숙의민주주의의 힘을 경험했습니다. 개헌 역시 그러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법조문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민주주의를 몸으로 느끼고 실천하며 나라의 주인으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