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일년 내내 여자의 문장만 읽기로 했다
- 하늘가 바다끝
- 작은 변화를 위한 아름다운 선택
- 책읽아웃
- 한평 반의 평화
- 폴 파머
- 패배는 나의 힘
- 협재해수욕장 달리책방
- 이찬규
- 진실된 이야기
- 황제신화
- 자코테
- 즐거운 살인
- 잠들면 안 돼
- 희망의 인문학
- 잠 못 이루는 행성
- 이덕무
- 존 쿳시
- 한 도서관 한 책 읽기
- 이영록
- 주름 대처법
- 채링크로스 84번지
- 아이티
- 키 큰 소나무에게 길을 묻다
- 인공낙태
- 출산서약서
- 이오지마의 편지
- 자비에르
- 이탁오평전
- 하상주 단대공정
- Today
- Total
마녀의 숨은 책방
선생님, 학생부를 왜 이렇게 고치시나요? 본문
국정감사 때만 되면 으레 등장하는 뉴스가 있습니다. 호통을 치거나 엉뚱한 질문을 하는 의원들을 집중 조명하며 국회의원의 자질 미달과 부실국감을 지적하는 것인데, 때론 국감 무용론, 아니 국회 무용론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많은 국민들이 국회의원을 흰 눈으로 보고 정치를 냉소하는 데는 이런 언론 보도가 한 몫 합니다. 물론 준비 부족, 자질 부족의 의원들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해마다 이맘때면 국회가 꼭 필요하며 국회의원이 놀고먹는 건 아님을 새삼 깨닫습니다. 평소엔 생각도 안 하고 알지도 못했던 사회 구석구석의 실상이 국감을 계기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가령 일선 고등학교에서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그렇게나 많이 고치는 줄 국감이 아니면 어찌 알았겠습니까.
최근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이 공개한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고등학교에서 학생부를 고치는 일이 급증해 지난해에는 무려 18만 2천 여 건이나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2012년에 비해 3배가 넘는 숫자인데, 올해는 상반기에만 벌써 10만 7760건에 달한다니 기록 경신도 멀지 않은 듯합니다. 혹자는 학생부 수정은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인데 왜 문제를 삼느냐 할지 모릅니다. 맞습니다. 동아리·봉사 활동, 수상 경력 등이 빠지거나 잘못 기재된 경우 증빙자료를 제시하면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불법이 아니라도 근 20만 건의 수정이 일어나는 것은 문제입니다. 열 명 중 일곱 명이 수시로 선발되는 대입에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3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만큼 학생부는 중요한 입시 자료입니다. 당연히 정확하고 신중하게 작성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자료에서 이토록 많은 수정이 이루어졌다면 애초 어떻게 작성했기에 이런 일이 생겨나며, 정정 요청이 이루어지지지 않은 것은 과연 정확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55,475건의 정정이 이루어진 대구에서 학생부 무단정정 및 조작으로 적발된 사례도 가장 많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합법적 수정이란 명목 아래 실제론 왜곡과 조작이 이루어지지는 않는지 의심할 수밖에요.
이를 반영하듯 지난 8월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5%는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등으로 학생을 뽑는 학종이 상류층에게 유리하다고 했고, 74.8%는 부모나 학교 담임교사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답했습니다. 툭하면 학생부가 고쳐지고 자소서는 물론 교사 추천서까지 표절·대필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자료의 신뢰성이 의심받는 건 당연합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공약했던 수능 개편을 미뤘지요. 일부 단체는 학종 폐지와 새로운 제도 도입을 주장하지만, 솔직히 학교와 교사가 위조에 나서는 마당에 과연 전형 제도를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될지 의문입니다.
얼마 전 노르웨이 정치학자들이 함께 쓴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상대적으로 평등하고 사회 안전망이 발달해 많은 한국인이 선망하는 북유럽 복지국가의 비결이 궁금했기 때문인데, 읽으면서 가장 놀란 것이 공교육에 대한 강조였습니다. 저자들은 북유럽의 성공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연대를 함께 추구한 사회민주주의 운동에서 기인하며 이를 일깨우고 장려하는 핵심적인 장이 학교라고 지적합니다. 이들은 부의 재분배만큼 중요한 것이 개인의 자기발전 욕구와 공동체 의식이라면서, 북유럽 국가들이 “기회의 평등과 동시에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증진”시키는 교육 시스템을 채택하고 공교육을 중시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공교육을 통해 시민이 공공의 정신과 정서를 공유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토대라는 것이지요.
교사가 내신을 조작하고 학원에서 동아리 사교육을 할 만큼 한국의 공교육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너나없이 공교육을 비판하면서도 교사 자격증은 부러워하고 그럼에도 교사의 권위와 공교육의 가치는 인정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 과연 여기서 제대로 된 교육과 공정한 평가가 가능할까요? 아무리 좋은 제도도 그 밑바탕을 이루는 공공선에 대한 믿음과 지지가 없다면 유지될 수 없으니, 정치든 교육이든 공적 가치가 중요함을 사회 성원 모두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신문 연재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께 읽기를 권함 (0) | 2017.12.30 |
---|---|
여운형에게 길을 묻다 -2017.11월 내일 (0) | 2017.12.01 |
흡연자를 죄인시하는 풍토에 반대합니다 (0) | 2017.08.22 |
잘 알지도 못하면서 -레밍과 국민에 대한 무지 (0) | 2017.07.31 |
억울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0) | 2017.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