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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평화를 지킬까? -코스타리카에서 배우다 본문
조용한 저녁나절, 펑펑 하는 갑작스런 폭음에 움찔했습니다. 뒤늦게 불꽃놀이라는 걸 알고 한숨 돌렸지만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축제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북미 간 갈등이 격화되는 위기의 계절이기도 하니까요. ‘완전 파괴’ ‘선전포고’ 등 두 나라 사이의 말 폭탄은 위험 수위를 넘어 터지기 일보 직전이고, 북한 핵․미사일 도발에 미국 전략폭격기가 NLL을 넘어 무력시위를 벌일 정도로 상황은 심각합니다.
지난 몇 달간 긴장이 높아져왔지만 한동안은 잘 해결되겠지 하고 크게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시도 때도 없이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다 보니 위기에 둔감해진 탓도 있고, 또 한편으론 새로 들어선 정부가 적극적인 평화외교로 꼬인 매듭을 풀 거란 기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프랑스가 평창올림픽 불참을 고려한다고 할 정도로 객관적인 상황이 악화되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우리 정부가 이 위기를 풀 비전과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사드 재배치, 국방장관의 연이은 돌출발언 등 정부 내 불협화음,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후 인정과 변명에 가까운 해명은 현 정부가 자신만의 로드맵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케 합니다.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북미 사이에서 운신의 폭이 좁은 정부의 고민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국민이 고민을 이해한다고 위기가 해결되거나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평화는 장기적이고 분명한 청사진, 좀 더 담대한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평화를 위해 군대를 없애고 주변국의 압력에 중립 선언으로 응수한 코스타리카처럼 말이지요.
중앙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코스타리카는 군대 없는 중립국입니다. 군대는 없지만 외국 근위대의 철통같은 경호를 받는 교황의 바티칸시국, 스위스와 미국 등 이웃나라 군사력의 도움을 받는 리히텐슈타인이나 도미니카공화국과 달리, 코스타리카는 1949년 헌법에 군대 폐지를 명시한 뒤 내란과 침략 등의 ‘사변’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명실상부한 비무장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주위의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등이 내전과 군부 쿠데타로 맘 편할 날 없었던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지요.
물론 미국이 강하게 반대했다면 이는 불가능했을지 모릅니다. 중앙아메리카는 한반도만큼, 아니 한반도보다 더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으니까요. 하지만 미국의 동의를 이끌어낸 적극적 외교가 없었다면 코스타리카가 지금처럼 중립국으로 평화를 누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1980년 니카라과에서 산디니스타혁명이 일어나 산디니스타와 미국 양측으로부터 압박을 받았을 때, 코스타리카는 한쪽 편을 드는 대신 ‘적극적 영구 비무장 중립선언’을 발표하고, 영부인 외교를 통해 중앙아메리카의 내전 종식을 위한 중재에 나섰습니다. 미국은 처음에 중립선언을 무시했지만 코스타리카가 유럽 등을 동원해 외교적으로 압박하자 결국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일본의 ‘평화 코디네이터’ 아다치 리키야는 코스타리카를 다룬 책 <군대를 버린 나라>에서 비밀은 민주주의에 있다고 말합니다. 리키야가 만난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은 민주주의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며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대화를 한다 해도 소수의 의견이 계속 무시된다면 그건 평화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무력으로 상대를 겁박하거나 다수결의 이름으로 소수를 무시하는 상태에서는 민주주의는 물론 평화도 불가능하다는 거지요. 초등학생이라곤 믿기지 않는 놀라운 정치의식인데, 이 또한 어려서부터 선거운동에 참여하며 정치의 중요성을 깨치게 한 민주적 시스템 덕분입니다.
그동안 무력으로 평화를 지킨다는 전쟁 억지력을 당연시했으나 이 책을 보고 의문이 생겼습니다. 물론 평화를 지키려면 자위력이 있어야지요. 하지만 그것이 단지 군사력만을 뜻하진 않습니다. 부디 이제라도 정부가 평화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더 다양하고 폭넓은 힘을 구사해 이 땅에 코스타리카를 넘어선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내일신문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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