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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싸고 간단한, 그러나 한없이 어려운 치료법 -대화

노바리 2017. 8. 30. 11:05

안젤로 볼란데스,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꼭 해야 하는 이야기들>



지난 해 제정된 ‘연명의료 결정법’의 첫 단계로 8월 4일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가 확대 시행에 들어갔다. 한국에서 호스피스가 시작된 건 1965년, 영국의 시슬리 손더스가 현대적 호스피스의 출발로 꼽히는 세인트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를 설립한 것이 1967년이니 퍽 이른 시작이다. 한데 이후 영국 등 여러 나라들이 호스피스를 의료체계에 도입해 완화의료를 발전시켜온 것과 달리, 한국은 생명연장과 첨단 의료기술에 중점을 둔 의료가 주를 이루었고 환자의 고통과 권리는 간과되어왔다.


다행히 이제라도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적극적으로 실시하기로 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환자를 중심에 둔 완화의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호스피스의 대상을 넓히고 병동과 인력을 늘리는 양적 조치로는 부족하며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 환자보다 질병에 초점을 맞춘 의료, 의사 중심의 권위주의적 시스템이 변해야 하고, 노화와 질병과 죽음을 실패로 여기는 우리의 가치관도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첫 걸음은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편안히 죽기를 바라지만 왜 수많은 이웃들이 병원에서 외롭고 고통스럽게 죽는지에 대해선 알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다르기를 바라고 다를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안젤로 볼란데스의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꼭 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그것이 얼마나 헛된 기대인지 알게 된다. 하버드 의대 교수이며 호스피탈리스트(입원전담 전문의)인 필자는, 지금처럼 삶의 마지막까지 공격적인 치료를 계속하고 그 부작용에 대해 침묵하는 한 평온한 죽음은 불가능하다고 확언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처방은 ‘대화’다. 그는 정말 중요한 의료행위는 값비싼 첨단 장비나 기술이 아니라 대화라면서, 환자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죽음을 맞고 싶은지 터놓고 대화해야 하며 이런 대화 없이 이루어지는 과도한 연명의료는 의료사고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대로면 한국의 의료현장에선 의료사고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셈이다. 의사는 물론 환자 가족들도 환자와 죽음에 대해 대화하는 일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의료적 처치에 비해 특별한 장비나 비용이 들지 않는데도 환자와의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사실 중병을 앓는 환자와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힘들다. 볼란데스는 대화는 “가장 어려운 시술”이므로 의과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강화하고, 의사가 된 뒤에도 수술 실습을 하듯이 대화술을 계속 연습해야 하며, 환자도 미리 사전의료지시서를 쓰고 주위 사람들과 죽음을 얘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지식의 불균형으로 인해 대화가 힘든 점에 대해선, 연명의료와 완화의료의 실제 과정을 보여주고 환자와 대화하는 동영상 해법을 제시한다.(그가 참여하는 단체에서 만든 http://theconversationproject.org에는 한국어 버전도 있다.)

책을 읽고 나니 호스피스 완화의료 발전을 위해 시설 확충보다 먼저 이런 책부터 읽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이 끝나기 전에 우리가 서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음을 깨닫고 나누기만 해도 마음은 가볍고 후회는 적을 테니, 더 늦기 전에 얘기 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