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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을 만큼 지성적이고 감성적인 동물의 세계 -주간경향

노바리 2017. 8. 3. 15:24

과학엔 젬병임에도 인문서보다 자연과학 책들에 자꾸 손이 간다. 몇 해 전 TV에서 본 영상 때문이다. 밀렵꾼에게서 자신들을 구해준 은인이 죽자 20여 마리의 코끼리가 집 앞에 모여 애도하는 장면이었는데, 그걸 보자 인본주의에 의심이 생겼다. 내레이터는 그들이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먼 곳에서 찾아와 장례식 내내 그렇게 있었고, 이듬해 기일에도 다시 왔다고 했다. 죽은 건 어찌 알았으며 동물이 어떻게 문상을 할까? 게다가 제사까지? 묵념하듯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서 있는 코끼리들을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봤는데도 시간이 흐르자 내 기억이 의심스러웠다.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일이니까.


다행히 생태학자 칼 사피나의 <소리와 몸짓> 덕분에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소통하는지 다룬 이 책의 첫 번째 주인공은 코끼리. 그들에 관한 긴 이야기 속에 내가 본 에피소드가 있었는데(171), 그쯤 읽었을 땐 이런 일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지능이 높고 사회적이고 조상을 존중하고 자신을 인식하고 공감할 줄 알고심지어 슬퍼서 죽을 수도 있는코끼리에 관한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잊히지 않는 건 가족을 모두 잃은 육지의 코끼리를 바다의 흰긴수염고래가 위로하는 대목이었다. 믿을 수 있는가? 바다와 육지에 사는 전혀 다른 동물이 종()을 초월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을. 하지만 가모장이 이끄는 복잡하고 끈끈한 공동체, 초음파를 이용한 놀라운 소통력, 큰 두뇌와 긴 수명 등 그들이 가진 여러 공통점을 생각하면 둘의 대화를 의심하는 것이 더 이상한지 모른다. 같은 인간보다 개나 고양이와의 소통에 열심인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걸 보면 더욱.


그러므로 정말 이상한 일은 동물도 생각하고 느끼고 함께 어울려 놀고 웃고 우는 존재란 것을 무수한 증거 -이 책은 750쪽이 넘는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특히 과학자들이 부정하는 것이다. 필자는 과학자들이 가짜 동물이나 거울 따위를 이용한 실험을 근거로, 동물에겐 마음이론도 자기 이해도 없으며 오직 인간만이 타자의 마음을 읽고 자아를 인식한다고 주장하는 데에 분통을 터뜨린다. 그는 자아 개념을 보여준다고 알려진 저 유명한 거울테스트를 비판하면서, 늑대가 자기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자기 다리를 뜯어먹을 것이니 거울은 자기 이해가 아니라 반영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사람뿐 아니라 영장류, 돌고래, 코끼리, 까마귀 등도 이를 이해하며, 인간성의 지표로 여겨지는 거울뉴런 역시 원숭이에게서 가장 먼저 발견되었음을 일깨운다. 한마디로 인간만의 고유성이나 특별함을 주장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실험실 심리학자와 행동주의 과학자들은 동물에게 부자연스런 억지스러운 실험으로 동물의 마음과 지능을 의심하고 그들이 인간보다 못함을 증명하려는 걸까? 실험실 밖에는, 물에 빠진 아기를 구하려다 익사한 수컷 보노보가 있고, 다른 종과 협력해 먹이를 잡는 그루퍼가 있고, 미끼낚시를 하는 왜가리를 비롯해 각종 도구를 사용하는 까마귀, 고릴라, 침팬지, 해달, 문어, 곤충들이 있는데도 왜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지 않고 마음이론이니 거울테스트 같은 걸로 인간의 특별함을 주장하는 걸까? 혹시 그것은 먹이를 구하러 6400km를 날아갔다 와서 수천 마리 새끼들 중 제 새끼를 콕 집어 찾아내는 알바트로스처럼 비상한 능력이 없는 데 대한 열등감이나 불안의 표현은 아닐까?


솔직히 항복한 적을 관대히 포용하고 솔선수범으로 무리를 통솔하는 늑대나, 평생 서로를 기억하고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고 생선 한 마리도 나눠먹는 고래를 보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필자는 동물의 우월함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모든 동물은 나름의 특별함을 갖고 있으며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삶은 무겁다. 내게도 네게도 그들에게도. 이 무거움이야말로 서로를 이해하고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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