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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읽을 만한 책 1+1

노바리 2016. 1. 4. 13:47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문학동네

미셸 팽송, 모니크 팽송-샤를로, <만화로 읽는 부자들의 사회학>, 갈라파고스

 

읽을 만한 책이 없다고 투덜거렸는데 올해의 책을 꼽으려고 찾아보니 의외로 읽을 만한, 아니 읽어야 할 책들이 많다. 그동안의 게으름이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책 소개를 하는 입장에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래서 오늘은 1+1이다.

 

첫 번째 책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이다. 올해 노벨상 수상작이라 굳이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읽은 사람이 드물다. 하긴 나도 풍문으로만 접했을 때는 읽고 싶지 않았다. 끔찍하고 슬픈 이야기라면 매일 보는 신문으로 충분하다 싶었다. 한데 직접 읽어보니 역대 노벨상 수상작 중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은 작가 자신의 목소리와 제2차 대전에 참전했던 여성 200여 명의 육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목소리 소설이라고도 하는데 그보다는 작가 자신이 명명한 코러스 소설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르포나 구술사 작업에서도 목소리는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수많은 목소리들이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처럼 때론 배음(背音)으로 때론 경고로 때론 탄식으로 발화하며 탁월한 문학적 긴장을 조성하는 것은 스베틀라나가 처음이다. 다만 읽기가 쉽지는 않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들의 고통스런 목소리를 듣는 게 힘들어서다. 그러나 7년 동안 노래는 없고 울음소리만 가득한 합창을 들으며 악의 노예가 되었고 그 심연을 들여다봤던작가를 떠올리면 이 정도는 감당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몸도 마음도 분주한 연말에 힘든 책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면 걱정 마시라. 두 번째 책, <만화로 읽는 부자들의 사회학>이 있다. 30년간 부자만 연구해온 프랑스의 부부 사회학자가, 부자란 무엇이며 부자는 어떻게 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만화로 가르쳐주는 온 가족 맞춤형 코믹 인문교양서다. 특히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가지가지 습관을 익히느라 기운 빼기 전에 이 책부터 읽기를.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일단 부자가 뭔지 알아야 부자가 되든 말든 할 게 아닌가.

 

이렇게 말하면 부자가 뭔지는 알아, 될 수가 없어서 문제지할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기 전에는 나도 그랬다. 아니, 부자가 뭔지는 알지만 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행여 될까봐 로또도 안 샀다. 그런데 책을 보니 로또에 당첨된다고 부자가 되는 건 아니란다.(열심히 일해서 되는 것도 물론 아니고. 그 이유는 30쪽에 나온다.) 부자가 되려면 돈 같은 경제자본은 기본이고, 문화·가족·사회·상징자본 등등과 더불어, 사사로운 감정과 상관없이 그들만의 리그를 위해 똘똘 뭉치는 연대의식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대학생이 생존을 결정하는 건 수저 색깔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죽었다. 맞는 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생존을 결정하는 건 이 사회를 움직이는 금빛 수저 색깔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운명을 탓하고 가난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자학해야 할까? 가난하게 사는 게 꼭 나쁜 건 아니라고 자족해야 할까? 이 책은 그렇게 가르치는 부자들의 사회학부터 버리라고, 그러면 다른 길이 보일 거라고 말한다. 하긴 수저 없다고 밥 못 먹나? 중요한 건 수저도 색깔도 아니고 함께 사는 것이다. 부자들처럼 함께 힘을 합쳐 잘사는 것이다.

---------------주간경향, 2015.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