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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의 추억 -내일신문

노바리 2015. 8. 28. 11:22

 

책 관련 단체들이 모여 만든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위한 시민연대’(이하 독서문화시민연대)에서 독서의 달인 9월 첫 주(1~7)금서 읽기 주간으로 선포했습니다. 공공 도서관을 중심으로 역사상 '금서'로 지정되었던 책을 읽고 토론함으로써, “독자들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표현의 자유와 이를 뒷받침하는 독서와 도서관의 자유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라고 합니다. 지난 5월 한 민간단체가 몇몇 아동 청소년 도서를 좌편향이라고 지목하자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교육청이 학교도서관 등에 추천도서가 적절한지 재고하라는 공문을 보내 논란이 일었는데, 그것이 행사의 계기가 되었다는군요.

 

아직도 이념을 이유로 도서를 검열하고 금서 목록을 만드는 이들이 있다는 건 걱정스럽지만, 덕분에 금서 읽기라는 재미있는 행사가 시작된 것은 반갑습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읽어라 읽어라 하는 것보다 읽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은 법이니 독서율을 높이는 데도 금서 읽기는 도움이 될 듯합니다. 불온서적을 갖고 있기만 해도 감옥에 가던 시절 95%가 넘었던 청년층의 독서율이 최근엔 30%대로 뚝 떨어졌는데, 그러고 보면 금서가 오히려 독서를 자극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만 해도 가장 열심히 흥미진진하게 읽은 것은 금지된 책들입니다. 어릴 적 부모님 몰래 읽었던 만화책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고, 고등학생 때 우연히 본 빨간책은 여전히 낯 뜨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독서 역시 한 권의 금서였습니다. 독서문화시민연대가 발표한 1차 금서목록에 이름이 오른 신동엽 시인의 장시(長詩) <금강>이 제게는 첫사랑과도 같은 바로 그 책입니다.

 

열아홉 어느 봄날, <금강>을 처음 만났습니다. 불법복제로 은밀히 전해지던 책을 건네며, 오빠는 조심해서 한 부만 복사해 오라고 평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하필이면 그날 교문 앞엔 전경이 즐비했고 그 중 한 명이 제 가방을 뒤졌는데, 바들바들 떠는 어린 여학생이 가여웠거나 아니면 錦江이란 한자 제목이 낯설었던 전경의 호의(?)로 무사히 위기를 넘겼지요. 그리하여 마침내 복사한 종이뭉치를 들고 도서관 맨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떨리는 가슴으로 <금강>을 읽었습니다.

 

우리들이 어렸을 적 황토 벗은 고갯마을 할머니 등에 업혀 누님과 난, 곧잘 파랑새 노랠 배웠다로 시작해, “잠깐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 영원의 하늘, 끝나지 않는 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로 이어지는 긴 시를 읽는 동안 몇 번이나 고개를 쳐들고 눈물이 마르기를, 솟구치는 격정이 가라앉기를 바랐는지요. 그때 복사한 종이를 직접 풀칠해 제본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금강>은 지금도 제 책장에 꽂혀 있습니다. 나중에 시절이 좋아져 정식으로 출판된 <신동엽 전집>을 사고서도 그 볼품없는 복사판을 버릴 수 없더군요. 그걸 볼 때마다 그날의 두근거림과 감동, 어둔 교정을 나오며 마음에 새긴 굳은 다짐이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아마 <금강>이 금지된 책이 아니었다면 어린 제가 그렇게 긴 시를 그토록 몰입해서 읽지는 않았을 겁니다. <금강>은 제 영혼을 흔든 시가 분명하지만, 제가 온 마음을 바쳐 그 시를 읽은 데는 권력이 금지했다는 특별한 사정이 한몫을 한 게 분명합니다. 권력이 두려워하는 시를 감시의 눈을 피해 몰래 읽는다는 데에서 오는 남다른 희열과 연대의 정()이 일상적일 수 있는 독서를 특별하게 만든 것이지요.

 

분서갱유를 한 진시황, 수백만 권의 책을 불태운 히틀러처럼, 역사상 많은 권력이 수많은 책들을 탄압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습니다. 역사책을 조금만 읽었다면 금서가 금지한 자들이 아니라 금지된 책들의 승리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텐데 아직도 금서를 지정하고 책을 탄압하는 이유가 뭔지. 혹시 책을 안 읽어서 이런 사실을 모르는 거라면 더 늦기 전에 책부터 읽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