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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사회에서 어른으로 살고 싶다! 본문
난생 처음 유럽을 다녀왔습니다. 해외로 나가기는 근 십 년 만인데다 숙박과 교통편은 예약했지만 영어도 못하는 처지에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해야 하는 자유여행인지라 걱정이 많았습니다. 더구나 출발 전까지 원고 마감을 하느라 끙끙대다 보니 열두 시간의 비행 끝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을 때는 아무것도 먹지 못할 만큼 몸이 상한 상태였지요. 결국 독일 맥주를 섭렵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탈진한 몸으로 낯선 길을 헤매고 다녔는데, 그럼에도 프랑크푸르트에서 파리를 거쳐 로마를 찍고 돌아올 때는 가기 전보다 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예전에 외국을 다녀올 때는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역시 고향이 좋다고 마음 편해 했는데 이번엔 달랐지요.
프랑크푸르트는 깨끗했고 파리는 아름다웠으며 로마는 웅장해서 감탄을 자아냈지만,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저는 화려한 유럽의 궁궐보다 고즈넉한 한옥의 그윽함이 더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풍경이 주는 감동 때문에 오는 걸음이 무거웠던 건 아닙니다. 그럼 메르스 때문이냐고요? 글쎄요. 가기 전에 이미 메르스가 퍼지는 걸 보고 큰일이구나 싶었기에 새삼 겁이 나진 않았습니다. 다만 사태가 이리 되도록 수수방관하는 국가의 국민인 것이 슬프긴 했습니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국민의 수준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겁을 집어먹고 규율을 어기는 저급함-을 탓하는 나라의 국민인 것이 억울했지요.
이 나라에서 반백년을 사는 동안 저는 늘 저와 이웃들을 탓해왔습니다. 사소한 교통질서도 잘 안 지키고, 선진시민의 교양도 갖추지 못하고, 국제화 시대에 영어도 못하고, 그래서 나라 망신이나 시키는 주제에 툭하면 나라 탓이나 하는 무책임하고 무식한 시민인 것을 부끄러워했지요. 그런데 빨간불에도 당당히 무단횡단을 하는 프랑크푸르트와 파리 시민들을 보고, 조금만 으슥하면 어김없이 지린내가 진동하는 파리와 로마 시내를 걷고, 나보다 나을 것 없는 영어 실력으로 세계인을 맞는 그들을 만나고 보니 뒤통수가 얼얼하더군요. 그제야 빨간불이라도 차가 없으면 건너고, 사람이 건널 때는 차가 기다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늦도록 술 먹고 담배 피며 논다고 나라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며, 영어 못하고 더럽다고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못 되는 것도 아니구나 싶었지요. 박물관에서 기막힌 작품을 보았을 때는 감탄사를 터뜨리고 사진을 찍는 게 자연스럽지, 꼭 살금살금 전전긍긍이 교양이 아니란 것도 알았습니다.
유명 미술가의 작품으로 장식한 퐁피두센터 앞 분수에는 개가 뛰어들어 첨벙대고, 세느강변에서는 매일 밤 술파티가 벌어지고, 루브르박물관의 밀로의 비너스 앞은 카메라 플래시로 요란하지만, 그 야단법석을 혼란이 아닌 활력으로 만드는 사회를 보면서 처음으로 내가 자유를 가진 어른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어른이란 자기 판단대로 행동할 자유를 갖되 그 행동에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지요. 제가 다닌 세 도시에는 시시콜콜한 안내도 금지도 없었습니다. 지하철 안내방송도 없고 휴대폰 통화는 조용히 하라는 지시도 없고, 박물관에서 떠들지 말라, 뛰지 말라, 사진 찍지 말라 같은 금지도 없었습니다. 세계화 시대인데도 이 나라들에서 영어 간판을 찾기는 어려웠으며 영어 안내문도 드물었습니다. 여기까지 네가 왔으면 그 정도는 알아서 해야 하지 않느냐는 식이었는데, 그게 잠깐은 불편했지만 곧 적응이 되었고 오히려 나를 어른 대접하는 것 같아 편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일일이 가르치고 지시하고 명령하는 나라에서 아이로 살다가 이 나이에 처음 어른이 된 것 같았지요.
그때 알았습니다. 권위주의란 국민을 어린애로 여기는 체제란 것을. "중동식 독감"일 뿐인 메르스가 이렇게 심각한 전염병이 된 것은 국민을 어린애처럼 여긴 정부 탓이 큽니다. 자신의 책임은 다하지 않은 채, 위에서 알아서 할 테니 가만히 있어라, 이 정도 병에 웬 난리냐고 국민을 을러대며 훈계하는 엘리트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인이고 관료라면 민주주의가 뭔지부터 배우십시오. 그런 다음에 ‘감히’ 국민을 가르치십시오.
-내일신문 201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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