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숨은 책방

웰컴과 니시카와 나가오 본문

영화관 옆 책방

웰컴과 니시카와 나가오

노바리 2013. 1. 31. 18:48

영화 '웰컴'을 보다. 영화평론가 김세윤이 극찬을 했길래 주저없이 선택했는데, 영화 중간쯤 느닷없이 눈물이 나더니 자꾸 눈가를 훔치게 했다.

고향 이라크에서 4600킬로를 걸어 터키로 온 소년은 거기서 프랑스로, 다시 연인이 있는 영국으로 가기 위해 비닐봉지를 쓰고 트럭을 타고 문 닫은 수영장에서 밤새 수영을 한다.

이주노동자에 관한 영화도 다큐멘터리도 꽤 본 터라, 뭐 그리 새삼스러우랴, 했는데 이 영화는 또 다른 울림을 준다. 두 남자 뱅상 랭동과 피랫 아르베르디의 연기는 행간이 많아서 가슴에 오래 머문다. 영화는 프랑스 난민촌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처참한 현실을 보여주지만 그 누구에 대해서도 비난하거나 평하지 않는데, 그래서 더 생각이 많아진다.


영화를 보면서 국경 없는 세상에 대해, 노동의 세계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실감을 갖고서. 한동안 노마드니 유목민이니 하는 말들이 유행했지만 나는 그 말들에 공감하지 못했다. 특히 자본의 세계 지배에 따른 끝없는 난민의 생산과 노동의 이동을 그 말들로 설명하려는 시도엔 불신감마저 들었다. 유목(遊牧)이란 말은 그 삶의 핍진함보다는 걸림없는 삶에 대한 감상을 낳기 쉽고, 실제로 그 말들을 즐게 사용한 이들에게선 그런 경향이 농후하다.


하지만 유목의 삶처럼 자연에 속박당한 삶도 없으리라. 자연을 정복한다는 엄두를 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것은 인간의 또다른 희망일 수 있겠지만, 그 삶을 당연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했던 필부들에겐 가혹한 것이었다. 그 가혹함은 그리고 현재진행형이다. 자유는 거기서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고, 운명은 무거움이다.


현대의 유목민에겐 기를 양이 없으며 이동의 자유도 없다. 가장 가난한 자들이 세상의 이곳저곳으로 떠밀리다 쓰러진다. 자본은 국경을 지우고 고향을 뿌리뽑고 디아스포라를 양산한다. 이들이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고향을 찾으려 하면 사라졌던 국경이 문득 나타나고 민족이 유령처럼 목덜미를 잡는다.

더이상 국경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 민족은 저들의 꽃노래일 뿐이라는 것을 절감하는 요즘이다. 하지만 그 실감을 설명하고 민족국가 너머로 나아가게 하는 이론은 만나기 힘들다. 민족국가는 없다,는 선언으로 우리의 가슴에 여전히 살아있는 민족국가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갈 길이 퍽 멀다. 앞으로 오래 공부해야 하리라.

시작은 니시카와 나가오다. 글에 허영이 없는 점이 마음에 든다. [국경을 넘는 방법] [국민이라는 괴물] [신식민지주의론]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이 기다리고 있다. [국경을 넘는 방법]은 구성이 좀 산만하지만 읽는 재미는 있다. 모레쯤 [국민이라는 괴물]로 넘어갈 작정. 그 다음엔 무엇으로 할까? 서점에서 책을 보며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