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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온 와이어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

노바리 2010. 2. 12. 10:35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에서 영화를 봤다. "맨 온 와이어"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에 줄을 매달고 꼭대기에서 왔다갔다한 줄타기 광대의 이야기라기에 별 기대 안 했다. 그런데 '시사인'에 실린 김세윤의 영화평을 읽고 솔깃했다. (김세윤은 잘난 척 안하면서 재밌고 반듯하게 평을 쓰는 보기드문 평론가라 나는 그가 추천하는 영화는 어지간하면 본다.) 

극장에 좀 늦는 바람에 영화의 앞부분 10분을 놓쳤다. 뭐, 큰 기대도 안 했는데... 근데 이 영화, 순식간에 빠져들게 한다.

얼마 안 되어 나는 두 손을 맞잡고 있었다. 눈시울은 벌써 씀벅거리고, 가슴은 아리다.

따지고보면 별 이야기도 없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에 몰래 잠입해 줄 매달려고 고생한 이야기, 그리고 그 위에서 왔다갔다한 이야기, 그게 다였다. 그런데 왜 울었냐면... 아름다워서,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워서 울고 말았다.

부연 허공 위에 선 필리프 프티가 씨익 웃을 때 주책없이 눈물이 났다. 한 마리 새처럼 줄 위에서 눕고 앉고 춤추는 그의 모습은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위해 아무 대가없이 헌신한 그의 친구들, 모든 것을 이루었을 때 새처럼 가볍게 떠나는 그들의 이별은 또 어떤가.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만약 십 년 전 그때 쌍둥이빌딩에 가미가제식 공격을 가하는 대신, 프티처럼 허공에 줄을 달고 '전쟁반대'를 외쳤다면 어땠을까? 죽음을 낳는 테러 대신 마음을 울리는 설득으로 상대를 무릎 꿇게 할 능력이 인간에게 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무모하고 어리석은가?

 

영화를 보고 도서관에서 필리프 프티가 직접 쓴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를 읽었다.

시 같은 문장, 감동을 주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오로지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 전력을 다한 문장이 눈을 사로잡는다.

나는 죽을 때까지 구름 위는 못 걷겠지만, 새처럼 허공을 베개 삼아 눕고 춤추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만으로도, 사람은 그런 꿈을 꾸는 존재라는 걸 안 것만으로도 내 지평이 한 뼘은 더 넓어진 듯 뿌듯하다. 그 기쁨이 땅 위에서 나를 춤추게 한다. 아름다운 삶이여, 고맙다! 프티 씨,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