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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숨은 책방
‘클래스’와 ‘공부의 신’ 본문
올해 서른이 된 조카가 예닐곱 살 때 일입니다. 무슨 일인가로 야단을 쳤더니 녀석이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더군요. 한마디도 안 지는 녀석이 괘씸해서 한 대 쥐어박았는데, 이 녀석, 그대로 주먹을 날리는 것이었습니다. 주먹도 제법 매웠지만 그보다 어린애에게 맞은 것이 기막혀서 눈물이 찔끔 나왔지요. 하도 창피해서 기억에서 지우고 있던 일을 새삼 떠올린 것은 ‘클래스’라는 영화 때문입니다.
2008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클래스’는, 한 중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줍니다. 감독은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배경인 학교는 물론 배우들까지 모두 파리의 중학교에서 직접 캐스팅했다고 합니다. 교육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이런 노력 덕분에,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학교 교육에 대해 현실적인 무게감을 갖고 고민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학생들의 태도입니다. 13~15세 정도의 학생들은 수업 진도와 상관없이 궁금한 건 뭐든지 물어보고 선생님과 대거리에 가까운 난상토론을 벌입니다. 이 통에 교실은 종종 아수라장이 되지만 교사는 화를 내지도 매를 들지도 않습니다. 다만 목소리를 높여 아이들의 주의를 끌고, 토론을 효과적으로 이끌려 할 뿐입니다.
물론 교사가 늘 평정심을 유지하거나 가없는 사랑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 말을 무시하고 툭하면 대드는 아이들 때문에, 교사는 화가 나서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기도 하고 아이를 교실에서 내쫓기도 합니다. 그래서 선생과 학생이라는 위치의 차이, 10대와 30대라는 나이의 차이를 빼면, 둘 사이의 차이는 그리 커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교사도 학생도 그 차이를 강조하거나 중요시하는 대신, 서로가 맡은 역할이 다를 뿐 인격이 다른 것은 아니라는 데에 공감하는 듯합니다.
예의를 요구하는 교사에게 학생은 ‘존경이란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동등한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배웠다’고 편지를 씁니다. 실화에 바탕을 둔 이 에피소드를 본 순간, 가슴이 철렁하더군요. 나이와 지위를 핑계로 존경을 요구해온 제 자신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말대꾸를 한다며 어린 조카를 쥐어박았을 때 제 마음속에는 그 아이와 내가 똑같은 인간이라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위치와 역할의 차이를 인격의 차이로 여기고 존경을 원했던 것이지요. 그런 제 용렬함 때문에 조카에겐 바른 훈육을 하지 못했고, 후배들에겐 모욕감을 주었으리란 걸 영화를 보며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학교가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있는지, 교육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묻는 프랑스 영화를 보니,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떠오르더군요. 열등생들이 열혈 선생의 도움으로 성적을 올리고 자아를 찾는 그 드라마에서, 학생은 주체가 아닌 대상에 불과했고 그들이 어떤 교육을 원하는지는 문제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원하는 걸 하기 위해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오래된 논리만이 진리처럼 통용되었지요. 드라마지만 그것은 우리의 교실 모습이었습니다.
최근 10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니, 삶에 만족한다고 답한 학생이 53.9%로 OECD 국가들 중 꼴찌더군요. 더욱 놀라운 것은, 행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 고3 학생의 28%가 ‘가족’보다 ‘돈’이라고 답한 점입니다.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고 권력과 돈을 얻은 뒤에 행복을 사라고 배운 아이들다운 대답이지요.
사람은 모두 평등하며 누구나 질문하고 배울 수 있다고 가르치는 교실과, 미래의 부와 권력을 위해 의심하지 말고 외우라고 가르치는 교실이 있습니다. 그 교실에 학생과 교장은 물론 세상 그 누구와도 동등하다고 믿는 스승이 있고, 그 교실에 국회의원과 교육감과 교장과 학부모들의 눈치를 보지만 학생들에게는 권위를 내세우는 스승이 있습니다. 어느 교실에서 어떤 스승에게 배우는 아이들이 행복하겠습니까?
곧 스승의 날입니다. 내 아이가 행복하고 당당한 인간으로 자라기를 바란다면 아이의 스승부터 제대로 대접해야 할 것입니다. 공연한 색깔론으로 교단을 흔드는 일 따위는 그만두고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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