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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숨은 책방
6월, 다시 전쟁을 생각한다 본문
처음 죽음을 생각한 것은 아홉 살 때였습니다. 도덕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들려준 이승복 이야기가 발단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선생님은 너무나 열성적으로 그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침을 튀며 말했습니다. “이승복 어린이가 외쳤어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그러자 공비가 승복이의 입에 손을 집어넣고 (선생님은 양손으로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이렇게 찢어 죽였습니다.”
선생님이 두 손으로 입을 찢는 시늉을 하며 교단에서 교실 중간으로 천천히 걸어오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를 만큼 그 이야기는 제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입을 찢어 죽인다니! 눈앞에 그 정경이 보이며 끔찍한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죽느니 미리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자살을 생각한 것은 그때부터였습니다.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은데 아홉 살의 저는 전쟁의 참혹함을 견딜 자신이 없었고, 차라리 먼저 죽어 세상의 폭력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습니다.
물론 자살은 안 했습니다. 아니, 무서워서 못했습니다. 워낙 겁이 많은 아이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때 품었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매일 반공교육을 받고, 어디선가 정체불명의 폭음만 들려도 혹시 전쟁인가 할 만큼 늘 긴장 속에서 십대를 보낸 제게, 전쟁은 추상이되 현실보다 더 구체적인 추상이었습니다.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어쩌면 더 두려운 그런 추상이었지요.
이제껏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겁쟁이 아이의 시시한 기억을 새삼 꺼낸 이유는, 이즈음 한반도에 급속히 퍼진 전쟁 위기감 때문입니다. 지난달 말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태에 대한 대북 강경 조처를 발표하면서 고조되기 시작한 전쟁 위기감은, 북한이 현 상황을 ‘엄중한 전쟁국면’으로 받아들인다고 맞받아치면서 순식간에 국내외에서 ‘제2의 한국전쟁’ 발발 가능성을 거론할 만큼 심각해졌습니다.
전쟁이 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위기의식을 부추긴 것은 강경 일변도로 맞서는 남북한 당국만이 아닙니다. 보수 언론인은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군 지휘관의 말을 인용하며 “전쟁을 결심할 수 있어야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역설했고, 군복을 입은 보수단체 회원들은 “미친 개 김정일을 때려잡자”는 피켓을 들고 광장을 점거했습니다.
그 와중에 외국인의 묻지마식 투매로 인해 주식시장은 폭락을 거듭했고,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인들은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야했습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은 입이 말랐고, 일부 부지런한 이들은 라면과 쌀을 사재기했으며, 신심이 깊은 이들은 나라의 안녕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마침 그 무렵 병원에 입원한 저는 링거를 꽂은 채 피난길에 오르는 상상을 하며 불안에 떨었습니다.
‘전쟁을 결심할 수 있어야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용감무쌍한 언론인과 달리 겁 많고 소심한 저는, 아무리 우리 군의 전투능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해도 전쟁을 ‘결심’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담대한 대통령과 달리 전쟁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저는, 이 땅에서 또다시 수백 만 명이 몰살당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60년 전 이 땅을 피로 물들였던 한국전쟁은, 전쟁을 통일의 한 방편으로 생각했을 때 어떤 참담한 결과가 나오는지 생생히 증언합니다. 3년간 500만 명이 넘는 인명이 피해를 입었으며 산업시설을 포함해 전 국토가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흔은 지금까지도 이 민족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이나 시종 북침통일을 주장한 이승만은 이 참화 속에서도 건강히 살아남아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피해를 입은 이들은 전쟁에 아무 책임도 없고, 아무 이득도 얻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권력이 전쟁을 수단으로 이용할 때 죄 없이 죽은 이들, 그들의 희생은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일전불사의 자신감이 아니라 ‘평화를 결심하고 전쟁은 피하겠다’는 각오를 요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무거운 것이 목숨입니다. 그 목숨을 수단으로 여기는 일은, 한국전쟁 60주년을 맞는 올해를 기해 더는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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