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숨은 책방

이름값을 하는 세상 -한국일보 9.19 본문

신문 연재칼럼

이름값을 하는 세상 -한국일보 9.19

노바리 2009. 9. 20. 11:09

언어에 민감했던 공자는 이름이 실질과 어긋나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논어> ‘옹야’편에는 공자가 ‘고(觚)’라는 술잔을 두고 “모난 잔이 모나지 않다면 그게 모난 잔이랴!”고 탄식하는 대목이 나온다. ‘고’는 본디 팔각으로 모가 난 술잔인데 공자 시대에 와서 모양이 둥그레졌다. 둥근 잔을 왜 ‘고’라고 부르는가, 사소한 어긋남이지만 공자는 마음이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역시 <논어>에 나오는 이야기다. 공자에게 제자 자로가 물었다. “위나라 왕이 정치를 맡기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이름부터 바로잡겠다.” 올바른 정치를 위해 수십 년간 천하를 떠돈 스승이니 굉장한 계획이 있으리라 여겼던 자로는 어이가 없었다. “정말 고지식하시군요. 왜 하필 이름입니까?” 따지듯 되묻는 자로에게 공자가 일갈했다.


“무식한 녀석!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며, 일이 잘 안 풀리면 예악이 흥하지 못하고, 예악이 흥하지 않으면 형벌이 공정하지 못하니, 그러면 백성들이 손발을 어디 두어야 할지 모르게 되는 법이다.”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을 보여주는 유명한 대목이다. 정명이란 이름을 실질에 맞게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맹자는 이를 토대로 임금이 임금이란 이름에 걸맞지 못하면 쫓아내도 된다는 사뭇 급진적인 주장을 펼쳤다. 역성혁명으로 나라를 세운 조선은 처음부터 정명을 내세웠고, 두 차례 반정으로 임금을 쫓아내어 맹자의 이론을 실천에 옮겼다. 그렇게 권력을 잡은 중종과 인조가 과연 이름값을 제대로 했는지와는 별개로, 그 역사는 이름값의 무거움을 증언한다.


하지만 이름에 맞는 실질을 갖추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옛일을 들출 것도 없이 최근의 일만 봐도 그렇다. 임진강에서 야영객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난 지 사흘 뒤,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희생자가 날 수 있음을 알면서 “의도적인 방류”를 했다고 밝혔다. 장관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몰라도, 남북대화와 협력을 주요 업무로 삼는 통일부 장관이라면 그 이름에 걸맞은 다른 말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수공(水攻)’으로까지 해석되는 강경발언은 국방부 장관이나 국정원장에게 맡기고 말이다.


이름과 실질이 따로 노는 예는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10일에는 현충원 앞에서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를 비롯한 극우단체 회원 150여 명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 이장을 요구하며 가묘를 파헤치는 소동을 벌였다. 가면을 쓰고 곡괭이를 휘두르는 노인들이 내세운 이름은 ‘어버이’였으니, 이름과 실질이 참으로 멀다. 공자는 어버이가 어버이답고 자식이 자식다운 것이 바로 정명이라 했다. 어버이는 엄격하되 자애로우며 사랑으로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던가. 어버이라는 이름과, 죽은 이의 묘를 파헤치겠다고 곡괭이를 들고 나서는 가혹함이 어찌 어울릴 수 있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대법관에 이어 법무장관 후보자까지 위장전입을 했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검찰총장도 그랬고, 발뺌하지 않고 사과하는데 너무 몰아붙일 것 있냐고, 요즘 세상에 위장전입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들 한다.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법을 관장하는 사람들이 법을 어겼으며, 법을 어겼음에도 처벌은커녕 출세에 아무 지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름과 실질이 어긋나기가 날이 갈수록 심하다. 그러니 백성들은 손발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그저 아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