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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이냐 변화냐 그것이 문제로다

노바리 2015. 3. 10. 13:51

 

 김시준 김현우 박재용 외 지음,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MID

 

도서관 신간으로 멸종에 관한 책이 세 권이나 들어왔다.(주) EBS 다큐멘터리 팀과 과학자 박재용이 함께 쓴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과학 저널리스트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여섯 번째 대멸종>, 영국의 과학자 스티븐 에모트가 쓴 <100억 명, 어느 날>이 그것이다. <멸종>이 지구상에서 일어난 다섯 차례의 대멸종을 통해 생명의 진화와 지구 역사를 보여준다면, <여섯 번째 대멸종>은 멸종 위기의 현장을 발로 뛰면서 쓴 가슴 아픈 탐사 에세이이고, <100억 명, 어느 날>은 섬뜩한 현실을 담은 그래프들을 보여주며 인간에 대한 절망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책이다.

자들의 면면이 다른 만큼 쓰는 방식도 책의 꼴도 전혀 다르지만 세 책이 하는 이야기는 똑같다. 지구 역사상 여섯 번째 대멸종이 시작되었다는 것. 그것도 혜성 충돌이나 화산 폭발 같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 때문에 지구 생명체들이 멸종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멸종에 관한 책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대멸종이 임박했다고 혹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경고하는 책들이 이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경우는 내가 알기론 처음이다. 그만큼 지구에 닥친 위기가 심각하며 그 심각성을 입증할 과학적 자료들이 충분하다는 이야기인데, 한마디로 대멸종이 괜한 노파심이 아니라 자명한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현실을 피할 방법이 있을까? 그걸 알려면 먼저 대멸종이 무엇이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체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왜 하필 내가 사는 지금인지 원인과 배경도 파악해야 할 것이고. 멸종이 임박했는데 그걸 언제 알아서 대책을 세우냐고 할지 모르나 걱정 없다. 나 같은 문외한도 이해하기 쉽게 대멸종의 모든 것을 정리한 친절한 교과서가 있으니까. 바로 EBS 다큐팀이 쓴 <멸종>이다. 이 책은 대멸종의 정의와 원인, 전개과정을 각종 그림과 사진을 곁들여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데, 덕분에 다 읽고 나면 대멸종은 물론이요 고생물학, 진화론, 지구과학 등 다양한 지식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멸종하면 파국을 떠올린다. 생물종의 75% 이상이 사라지는 것이 대멸종이니 끔찍한 파국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 파국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며 진화의 도약대였다고 말한다. 예컨대 지구 역사상 최악의 멸종으로 불리는 페름기 대멸종이 없었다면, 멸종의 아이콘 공룡도 없었을 것이며 봄을 기다리게 하는 꽃들의 향연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백악기 대멸종으로 공룡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포유류 전성시대, 아니 인간 전성시대는 도래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지구는 화산 폭발, 빙하 작용, 소행성 충돌, 오존층 파괴 등 여러 원인에 의해 다섯 번 대멸종을 겪었고 그때마다 새로운 생태계에서 새롭게 진화해왔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말하듯 멸종은 실패가 아니다. 필자들은 사람이 목적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 것처럼 어떤 종도 목적을 갖고 태어나거나 진화하지 않으며, 따라서 목적을 전제한 실패라는 말은 멸종에 쓸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다가온 여섯 번째 대멸종은 다른 것 같다. 이번 멸종이야말로 더 잘 먹고 잘살겠다는 인간의 목적의식이 불러온 파국이니 말이다.

 

인간이 이 파국을 피할 수 있을까. 세 책은 조금씩 다른 전망을 내놓지만 한 가지 점에선 똑같다. 인간이 변함없이 지금처럼 산다면 멸종은 피할 수 없으며 그 과정은 끔찍하게 고통스러우리란 것이다. 그래도 계속 이렇게 살다가 멸종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변화해서 함께 살 것인가.  남은 건 우리의 선택이다.

 

 

 

(주) 세 권의 책은 모두 작년 여름에 출간되었다. 신간이라기엔 좀 묵은 감이 있는데, 안타깝지만 도서관에서 신간을 보려면 이 정도 지체는 예사인 게 우리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