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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숨은 책방
연쇄17 - 진화의 달인에게 배우다 본문
정준호,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후마니타스, 2011
지난 번 연쇄서는 정부희의 『곤충의 밥상』이었는데, 만학의 곤충박사가 쓴 이 책을 읽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며, 내가 모른다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님을 깨달았지요.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에 나무 이름 풀이름도 변변히 알지 못하고 사마귀와 메뚜기도 잘 구별 못하는 푼수지만, 『곤충의 밥상』을 읽은 뒤로는 벌레 한 마리에도 마음이 쓰여서 잡초니 해충이니 하는 말은 쓰지 않으려 애씁니다. 쓸모없다거나 해롭다는 것이 모두 사람의 잣대일 뿐, 너른 자연의 시각에서 보면 산 것은 산 것대로 죽은 것은 죽은 것대로 다 까닭이 있고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솔직히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가슴 한쪽은 어쩐지 석연치가 않습니다. 『곤충의 밥상』에서 본 섬뜩한 사진 한 장, 애벌레의 몸속에 잔뜩 알을 까고 그 속살을 파먹으며 자라는 기생벌의 모습이 떠올라서입니다. 조안 엘리자베스 록은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조응주 옮김, 민들레, 2004)고 했지만, 남의 새끼를 숙주 삼아 제 새끼를 키우는 기생벌의 행태는 아무래도 나쁜 것 같습니다. 남의 둥지에서 제 새끼를 키우는 뻐꾸기 같은 새도 그렇지요. 그런 식으로 남을 등쳐먹는, (우아하게 표현하면) 남에게 기생하는 생물들도 나쁘다고 할 수 없는지, 그럼 회충, 요충, 구충 같은 각종 기생충도 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더군요.
나만 이런 생각을 하나 싶었는데, 웬걸요? 찰스 다윈 같은 대단한 생물학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기생벌의 유충이 숙주의 몸속에서 숙주를 파먹는 것이 너무 소름 끼쳐, 자애롭고 전능하신 신께서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살아 있는 애벌레의 몸을 갉아먹는, 기생말벌의 한 종류인 맵시벌을 정성껏 창조했다고 믿을 수가 없다.”1)고 고백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사람들이 기생충을 싫어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기생충이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탓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남의 수고와 목숨을 빼앗아 사는 그 이기적인 행태가 미워서일 겁니다. 생긴 것도 징그러운데 아무 쓸모도 없는 녀석이 남의 덕에 산다고 생각하면 부쩍 더 밉고 싫은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 기생충은 아무 쓸모도 없고, 남을 괴롭혀서 제 잇속만 챙기는 나쁜 생물일까요?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왜 모든 생물은 기생충처럼 살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기생해서 사는 편한 삶이 있는데 왜 기생충의 숙주노릇을 하며 힘들게 사느냐 말이지요. 기생충은 영리한데 숙주는 멍청해서 그런 거라면, 그래서 시쳇말로 기생충의 호구노릇을 하는 거라면 할 말은 없지만….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풀기 위해 비위가 좀 상하긴 하지만 기생충에 관한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때마침 한국 과학자가 쓴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라는 신간이 눈에 띄더군요. 문학은 첫 작품이 대표작이 되는 예가 많지만, 이런 과학 교양서의 경우는 경험과 지식이 쌓일수록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이 상례라 사실 처음엔 큰 기대 안 했습니다. 이 책이 필자 정준호의 첫 책인데다, 필자는 책이 나온 뒤 바로 군 입대를 한 아주 젊은 과학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도 책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말할 게 아닙니다. 기대 이상의 책, 열일곱 번째 연쇄서, 기생충학자 정준호의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입니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알던 지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는 것. 카프카식으로 말하면 ‘머리를 치는 일격으로 우리를 깨우는 책’인 셈인데, 책을 펼치자마자 정수리에 죽비가 날아듭니다. 맨 처음 날아든 죽비는 “기생충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기생충이 뭔지는 안다고 생각했던데 기생충학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이 기생충을 정의하는 것이라니 의외였습니다. 특히 필자가 기생과 공생의 애매한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장에 사는 정상미생물총은 사람이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사람은 이 세균들이 없이는 살 수 없으니 “상대적으로 더 큰 이득을 취하는 인간이 미생물에 기생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데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이 박테리아에 기생한다니, 이런 발상의 전환이 있을까 싶더군요.
그런데 필자는 “발상의 전환을 일으킨 생명체”는 바로 기생충이라고 말합니다. ‘기생’이라는 생활방식의 혁명을 통해 “기생충은 진화를 주도했고, 성(性)을 탄생시켰으며, 지금의 우리 인간을 있게 해주었다”는 겁니다. 처음엔 긴가민가했습니다. 하지만 원래 독립생물이던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가 세포에 기생하다가 세포 내 소기관이 되어 진핵생물의 진화를 이루었다거나, 새의 부리가 깃털에 사는 기생충을 제거하는 데 편리하도록 진화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기생충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무성생식 대신 유전적 변화가 큰 유성생식이 발달하고 성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설명을 읽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심지어 우리가 똥 냄새를 싫어하는 것도 기생충과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좀 거시기한 실험이지만, 사람들에게 13종류의 포유동물의 배설물 냄새를 맡게 한 뒤 역겨운 정도를 매기게 했더니 사람과 가장 많은 기생충을 공유하는 동물의 배설물이 제일 역겹다고 했답니다. 당연히 일등은 사람 대변.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 똥 냄새를 싫어하는 건 그 속에 숨은 기생충에 감염될까 봐 위험을 피하려는 진화의 노하우라는 것인데, 똥 냄새 하나에도 이렇게 깊은 뜻이 숨어 있을 줄이야!
기생충의 영향력은 생물 진화뿐 아니라 인간의 역사에서도 확인됩니다. 옛날 옛적, 사람들이 수렵 채취를 하며 이동생활을 할 때는 기생충과 접촉할 가능성이 낮았고 그 영향력도 미미했습니다. 하지만 농업혁명 이후 인구가 늘고 출산율이 높아지면서 기생충은 인간의 풍토병이 되었지요. 특히 제국주의와 산업혁명, 그리고 운송수단이 발달하면서 기생충은 전 세계로 퍼졌고, 다양한 환경과 숙주에 적응하며 빠르게 진화해갔습니다. 더불어 인간의 역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에 이르렀지요.
예컨대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에스파냐 군대의 총칼만이 아니라 그들이 들여온 천연두와 홍역이었고, 1739년 젠킨스의 귀 전쟁에서 전투 한번 못하고 영국군이 패퇴한 것은 황열병과 말라리아 때문이었으며, 1948년 중국공산당이 대만에 국민당정권이 들어서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도 병사들이 주혈흡충에 감염되었기 때문이었답니다. 숙주에 기생하는 것 외에 아무 능력도 쓸모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기생충이 사실은 역사의 숨은 주역이었다고나 할까요.
물론 기생충의 영향력 앞에 인간이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구약성서 민수기편에 기록된 불뱀 이야기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는 모두 사람의 다리를 뚫고 나오는 메디나충 치료법과 관련된 것으로,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이 기생충에 대처하기 위해 애써왔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1미터에 달하는 메디나충이 끊어지지 않도록 막대기에 감아 빼내는 고대의 방법이 지금도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쓰인다는 점입니다.
기생충 박멸을 목표로 그토록 많은 항생제와 살충제가 개발되었는데도 수천 년 전의 치료법이, 그것도 기생충을 퇴치하거나 감염을 막는 것이 아니라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사후조치가 효과적이라는 것은 기생충의 생존능력을 반영하는 증거일 터. 초등학교 때 채변봉투 이후로 잊고 있었던 기생충에 대한 두려움이 문득 되살아납니다. 더구나 책에 따르면, 회충 알은 2퍼센트 포르말린 용액에서도 성장하고 50퍼센트 황산이나 염산 안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니, 죽어도 죽지 않는 이 터미네이터 같은 생명체를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을지 한숨이 나옵니다.
그러나 독한 것이 사람이라지 않습니까. 책을 보니 기생충 퇴치에 나선 과학자들의 투지 또한 기생충 못지않습니다. 기생충의 정체도 감염경로도 밝혀져 있지 않던 시절, 과학자들은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삼아 목숨을 건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소련의 과학자들은 회충 알의 생존력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알을 삼켰고, 19세기 학자 칼란드루치오는 구두충을 먹고 그 감염 후유증을 기록했지요. 또 황열병을 연구하던 아드리안 스톡스는 균을 넣은 원숭이를 부검하던 도중 황열병에 걸려 사망했는데, 죽기 전 자신을 실험체로 삼아 연구를 계속해달라고 유언했고, 덕분에 황열병이 모기를 통해 전염되는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같은 과학자들의 희생과 열정을 통해 기생충 박멸 프로그램과 치료법도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최고의 성과는 1980년 세계보건기구가 천연두 박멸을 공식 선언한 것입니다. 인간이 질병을 상대로 거둔 최대의 승리이자 현대 의학의 개가였지요. 그뿐 아니라 몇몇 지역에서는 말라리아가 사라졌고, 전설의 메디나충도 박멸 프로그램이 성과를 보였습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한국이야말로 기생충 박멸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니까요. 30여 년 전 기생충 감염률이 70%를 넘던 시절, 아이들은 채변봉투를 학교에 가져갖고 선생님은 반강제로 구충제를 먹였습니다. 그 덕분인지 오늘날 한국은 감염률 2~3%대로, 아프리카 저소득 국가들에게 박멸사업의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모범국가가 되었지요.
그러나 이를 두고 기생충 박멸을 운운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말라리아가 사라진 지역은 그 뒤 말라리아가 재유입되면서 어린이 사망률이 급증했고, 천연두가 박멸되었나 하나 감염성질환은 여전히 세계 사망원인 2위이며, 감염자 비율은 60년 전과 별 차이가 없어서 세계인구 5명 중 1명이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의술이 발달하고 신약이 개발되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은 인간보다 진화속도가 훨씬 빠른 기생충이 저항력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입니다. 적응의 달인답게, 처음엔 백신에 타격을 입었지만 이내 약물저항성을 길러 적응한 것이지요.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것이 붉은 여왕 가설입니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땅에서는 아무리 힘껏 뛰어도 같은 자리를 지킬 뿐입니다. 마치 인간이 기생충에 맞서 아무리 기를 써도 물고물리는 둘의 관계는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필자 정준호의 말처럼 “생존경쟁에서 뒤처지는 즉시 파멸의 길을 걷게” 되므로 끝도 없이 달려야만 할까요?
해답의 실마리는 정준호의 책을 읽고 기생충에 회가 동해서 읽은 칼 짐머의 『기생충 제국』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칼 짐머는 여기서 붉은 여왕의 역설을 이야기하며, 소설 속 장미꽃이 엘리스에게 해준 충고를 일깨웁니다. “다른 길로 걸어가 보는 게 어때요?” 칼 짐머는 성의 탄생을 설명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내지만 내겐, 붉은 여왕을 잡기 위해선 죽어라고 뛰는 것보다 방향을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듯, 기생충을 잡는 데도 “다른 길”로 가보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일테면 기생충에 대한 저항과 박멸만을 목표로 삼던 기생충학이 인내와 활용으로 관점을 바꾼 것이 그런 예이지요. 그 결과 최근에는 기생충으로 기생충을 잡는 방법부터 기생충으로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는 법, 구더기나 거머리 따위를 의료용으로 사용하는 방법까지, 기생충의 능력을 활용하는 시도들이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생충이 가진 이런 능력에 주목한 필자는 그래서 멸종 위기 기생충의 보존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필자가 기생충의 위험성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아프리카 스와질란드에서 의료봉사를 하며 기생충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직접 돌보았던 그는, 기생충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은 건강은 물론 경제적 손실을 막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그가 기생충을 보존하자는 것은, 기생충이 가진 잠재력과 가능성을 묻어둔 채 박멸만을 외치는 것은 기생충보다 더 무서운 위험을 낳을 수 있으며, 인간은 진화의 달인 기생충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충격과 놀람 속에서 『기생충, 우리들의 영원한 동반자』를 읽고나니 징그럽고 무섭기만 하던 기생충이 다시 보입니다. 무엇보다 “기생충 같은 인간”이란 말은 앞으로 내게 욕설이 아니라 칭찬이 될 것입니다. 기생충처럼 유연하면서도 꿋꿋하게 환경에 적응하는 인간이 되기를 바라니까요. 그렇지만 직접 내 몸에 기생충을 키우고 싶진 않기에 당장 약국에 가서 구충제를 사야겠습니다. 꽤 오래 편안히 지냈던 내 몸속의 기생충들이 아마 깜짝 놀라겠지요. 그리고 더 열심히 진화하겠지요. 그러면 나도 분발해서 좀더 진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원고를 끝냈는데, 아뿔싸! 책을 만든 편집자에 따르면 필자 왈, 요즘에는 기생충 샘플을 얻기 어려워 수입할 정도이니 구충제를 먹을 필요가 거의 없다고요.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 나를 키워온 기생충들이 다 죽어서 지금 내 삶이 이렇듯 지지부진한 건 아닌지, 갑자기 지저분했지만 생기발랄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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