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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숨은 책방
연쇄15 잘 먹고 잘 싸우기 본문
게리 폴 나브한, 강경이 옮김,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아카이브, 2010
반 년 넘게 연쇄독서탐사를 하면서 뜻밖의 대어를 낚고 희희낙락할 때도 있었지만 도무지 앞이 안 보여 좌절할 때도 많았습니다. 좀더 재미있고 독특한 책이 없을까 찾다보면 어느새 마감이 코앞이라 허둥거리기 일쑤였지요. 그런데 아주 가끔은 한 권의 책이 너무 많은 연쇄를 일으켜서 행복한 고민을 할 때가 있습니다. 가령 지난번에 소개한 <몬산토>가 그런 경우인데, 책을 덮기도 전에 다음 책들이 마구 마구 떠올랐지요.
그 중에서도 다국적 식품의약기업의 추악한 실상을 폭로한 스탠 콕스의 <녹색성장의 유혹>(추선영 옮김, 난장이, 2009)과, 홍보란 이름으로 정보조작을 서슴지 않는 기업 행태를 비판한 <스핀닥터>는 마지막까지 열다섯 번째 연쇄서의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인 책들입니다. 특히 <스핀닥터>(윌리엄 디난 외 지음, 노승영 옮김, 시대의창, 2011)에 실린 조너선 매슈스의 「생명공학의 사이비 여론형성가」라는 글을 읽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매슈스는 몬산토가 어떻게 여론을 조작하는지 실제 사례를 보여주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2002년 요하네스버그 지구정상회의 때 벌어졌던 빈민 시위입니다. “생명공학이 아프리카를 살린다”는 구호 아래 흑인 빈민과 인도 농민들이 나선 당시 시위는, 몬산토 같은 다국적기업의 GMO식품은 가난한 제3세계의 식량․빈곤 문제를 오히려 심화시킬 뿐이라는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지요.
하지만 매슈스는 치밀한 취재를 통해, 이 시위가 사실은 몬산토와 다우케미컬스 등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우익 기구들에 의해서 조작된 것임을 폭로합니다. 그들은 인도와 아프리카 출신의 인물을 내세워 마치 이들이 현지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듯 꾸미고, 돈으로 가난한 빈민들을 동원해 시위를 벌이는 수법을 자주 사용했지요.
GMO식품이 없어서 사람이 굶어죽었다는 거짓말까지 태연히 늘어놓는 다국적기업과 우익홍보단체들의 행태를 고발한 매슈스의 글을 읽노라니, ‘세상에 믿을 X 하나 없다’는 장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매슈스의 글만이 아니라 <스핀닥터>의 다른 글들도, 또 <녹색성장의 유혹>도 장탄식을 부른다는 점에선 비슷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스핀닥터>와 <녹색성장의 유혹>으로 연쇄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입니다.
현실을 변화시킬 강한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현실의 문제점만 너무 많이 알게 되면 자칫 비관과 절망에 빠지기 쉽습니다. 지성의 비관이 싹트는 것이지요. 그래서 <몬산토>의 문제의식을 이으면서도 조금은 희망적인 이야기가 있는 책을 찾았습니다. 조작된 희망이 아니라 진짜 희망을 찾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뒤졌지요. 그리고 일주일 만에 드디어 찾은 희망의 열다섯 번째 연쇄서,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입니다.
미국의 농부이며 식물학자이고 환경운동가인 게리 폴 나브한이 쓴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에는 ‘15개 언어를 구사하며 세계를 누빈 위대한 식량학자 바빌로프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바빌로프가 누구지? 무식한 나는 뒤표지에 실린 추천사를 읽어보았습니다.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이상주의자, 씨앗을 찾아 5대륙을 누빈 육종학자, 스탈린 치하에서 최후를 맞은 비극의 과학자. 짧은 소개이지만 호기심이 동하더군요. 그렇다고 책에 대해 큰 기대를 한 건 아닙니다. 훌륭한 과학자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한 위인전 같은 것이려니 생각했지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이 책은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바빌로프(1887-1943)라는 죽은 과학자를 기리는 전기가 아니라, 죽은 그를 되살려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바꾸려는 또 다른 바빌로프의 이야기였습니다. 필자 나브한은 책상에서 바빌로프의 생애를 복원하는 대신, 몸으로 바빌로프의 자취를 좇습니다. 기아를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사막과 고원과 열대 우림을 넘나들었던 바빌로프를 따라,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콜롬비아로, 에티오피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레바논에서 타지키스탄을 거쳐 미국을 찾습니다.
그리고 이 긴 여행을 통해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이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그 음식들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는지, 그 음식들을 계속 먹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이 책의 제목이 <바빌로프 전(傳)>이 아니라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인 것은 그래서입니다.
바빌로프를 좇아 나브한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상트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에 있는 바빌로프 식물산업연구소입니다. 바빌로프가 전 세계 오대륙을 115회나 원정하며 채집한 2500종의 작물을 토대로 현재 38만여 개의 종자를 저장하고 있는 세계 최대 종자은행이지요. 2006년 봄 이곳을 찾은 나브한은 인류의 미래를 밝혀줄 보물 같은 종자들에 감격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숱한 이들의 희생에 눈물짓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7월, 스탈린은 나치의 손아귀에서 에르미타시 박물관의 소장품을 지키라고 명령했고, 열흘 만에 150만 점이 넘는 미술품이 포장되어 은신처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세계유산의 보고 바빌로프 연구소에 관심을 쏟는 이들은 없었습니다. 바빌로프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스탈린은 물론이요, 에르미타시의 미술품을 잃을까 마음을 졸였던 지식인들도 연구소의 운명에는 무관심했지요. 대신 연구소를 기억하고 주목한 것은, 세계 최대의 종자은행을 장악해 미래의 식물 육종에 이용할 야심에 불타던 나치였습니다.
그들의 야심으로부터, 900일간 계속된 레닌그라드 봉쇄로부터, 그 폭력과 굶주림의 시대로부터 인류의 씨앗을 지킨 것은 평생 연구밖에는 몰랐던 과학자들이었습니다. 70만 레닌그라드 시민이 아사한 그 시절, 연구자들은 장래 더 많은 감자를 생산할 씨감자를 얻기 위해 굶어죽으면서도 감자에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나브한을 안내하던 알렉사니안 박사는 연구소 복도에 걸린 흑백사진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여기 이 여자분을 보세요. 씨감자를 책임졌던 분인데 감자밭을 지키다 돌아가셨어요.… 여기 이 분…이분들이 종자를 지키다 숨진 과학자들이에요.”
씨앗자루를 쥔 채로 책상에서 숨을 거둔 스추킨, 수천 자루의 벼 종자를 안전한 곳에 옮기다 아사한 이바노프, 포탄에 맞아 숨진 울프, 끝까지 문서실을 지키다 죽은 글레이베르… 종자를 지키다 죽은 이들은 한둘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의 스승이요 동료이며 의지고 희망이었던 사람, 바빌로프도 그 무렵 멀리 사라토프의 감옥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다 숨을 거뒀습니다. 더 많은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애쓴 죄로 제 목숨을 잃다니, 참으로 기막힌 일이지요.
하지만 더 기막힌 일은 이런 비극이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겁니다. 1992년 전쟁의 와중에서 아프가니스탄 종자은행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종자 등이 보관된 아부그라이브 유전자은행과 식물 육종기관이 폐허가 되었으니까요. 만약 그 아수라장 속에서 몰래 종자를 감춰 숨긴 몇몇 과학자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유전자의 성배이자 잃어버린 종자를 담은 노아의 방주”는 영영 사라지고 말았을 겁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서, 전쟁 같은 재난에 대비한 세계종자은행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작물다양성재단’은 그 대표적인 기구로, 이들은 바빌로프가 꿈꿨던 세계종자은행의 완성을 위해 수십만 종의 식물종을 보존․관리하고 있으며, 종자에 대한 접근권을 민주화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갈수록 위태로운 종자의 운명을 생각하면 퍽 다행한 일이지요.
그러나 나브한은 종자은행이 미래를 위한 보험은 될지 몰라도 그 자체가 미래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저축된 종자는 “시간이 정지된 종자”일 뿐, 해마다 땅에 뿌려지고 재배되면서 기후변화와 질병, 해충 따위에 반응하는 “살아 숨쉬는 종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종자를 지킨다며 정작 현장의 농부들은 무시하는 지식인과 단체들을 비판하면서, 세계 최대의 종자은행을 만든 바빌로프뿐 아니라, 농부들과 종자를 나누고 토론했던 경작지의 바빌로프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이 바빌로프의 ‘다양성 중심지’라는 개념입니다. 바빌로프는 이 개념을 통해, 티그리스, 나일, 황하 등 큰 강가의 범람평야를 농업의 기원지로 꼽던 통념과 달리 농업문명의 요람은 산악지대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산악지대의 작물다양성이 가장 크며, 작물다양성이 높은 지역일수록 토착 언어와 야생생물 다양성도 높다는 것을 처음으로 지적했지요.
나브한은 ‘다양성 중심지’ 개념이야말로 바빌로프의 가장 큰 공헌이며, 그 덕분에 오늘날 생물지리학자들이 생물다양성 패턴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나아가 그 개념은 이어받았지만 그 정신은 놓쳐버린 환경단체들을 비판합니다. 즉, 토착주민에게서 땅을 사들이거나 지역을 공동 관리하려 하는 국제보존협회 같은 단체들의 활동이, 오히려 다양한 작물을 관리해온 농부와 삼림 경작지를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1935년에 이미 식물지리학이 인간의 문화를 무시하지 말고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바빌로프를 상기시키며 사람을 도외시하는 이들을 비판합니다.
“환경론자들은 국립공원 같은 보호구역은 중시하면서도, 공동체를 중심으로 사람과 자연 사이의 상호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보존과 복원 전략에는 시큰둥한 경우가 많다. 자신들의 생존이 지난 수세기 동안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작물다양성을 보존해온 농부들의 투박한 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환경운동을 탄생시킨 ‘다양성 중심지’라는 개념이 야생서식지가 아닌 토착농업 연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다.”
물론 나브한은, 농업이 환경을 파괴하기도 하며 농부들이 돈 때문에 전통 작물 대신 마약 따위를 심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그는 식량문제가 터졌을 때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것도, 또 그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도 농부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그는 기업과 학계의 전문가들이 만든 개량종이 실제 현장에서는 열등종으로 판명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바빌로프가 그랬듯 농부들을 존중하고 그들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가 이렇게 농민의 권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식량 문제는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아의 근본원인은 식량이나 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프란시스 무어 라페의 말을 인용하며, 식량안보를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종자다양성에 대한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접근성”에 달려 있다고 단언합니다. 다시 말해, 농민들이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종자자원을 사용하는 생산의 민주성이 확보되고, 시민들이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다양한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식량민주주의가 보장되어야만 식량안보도 종자의 미래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수십 년 전, 작물다양성을 주장하던 한 과학자는 집단농장을 강요하는 독재정권에 의해 굶어죽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거대자본에 의해 대규모 단작이 추진되고 작물다양성이 사라지며 종자마저 독점된 세계에서, 해마다 5세 이하 어린이 1천 2백만 명이 굶주림 때문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식량이 부족한 탓이라고 하지만, 현재 전 세계 곡물생산량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하루 3500칼로리를 공급할 수 있을1) 정도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식량안보를 지키고 자본의 독재에 맞서 식량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일 터. 과연 이 자본의 독재에 맞서 식량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요? 전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력을 생각하면 자신도 없고 밥맛도 떨어집니다만 어쩌겠어요. 그럴수록 잘 먹고 밥심을 키워야겠지요. 우리가 기댈 건 돈도 권력도 아닌 그저 밥, 밥심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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