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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연재칼럼

담배를 위한 변명

노바리 2010. 3. 9. 09:27

“쿨럭 쿨럭 캑캑 쿨럭!”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시작입니다. 8시 30분, 계단에서 들려오는 해소 기침소리와 함께 아침의 상쾌함은 날아가고 일상의 고단함이 밀려듭니다. 기침의 주인공은 위층에 사는 어르신으로, 기침소리는 이분이 담배를 피운다는 신호입니다. 골초인 이 양반은 집안에선 흡연을 금지 당했는지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데, 그 바람에 아래위층 이웃들이 곤욕입니다. 담배연기보다 더 괴로운 것은 폐부를 찌르는 듯한 기침소리와 침 뱉는 소리. 그 소리가 두어 시간 간격으로 종일 이어지니 어지간한 비위로는 감당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분의 흡연이 문제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석 달 전 제가 사는 곳이 금연아파트로 지정되면서부터입니다. 원래 아파트 뒤편 화단과 놀이터 옆 등나무 아래서 담배를 피우던 위층 어르신은 그곳에 금연 스티커가 붙자 당신 집 아래층 계단을 흡연 장소로 택한 것입니다. 물론 그분에게 규정을 내세워 흡연을 당장 그만두라고 요구할 수도 있고 벌금을 부과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웃 간에 처벌 규정을 내세워 시비를 가린다면 비록 담배연기가 사라진다 해도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얼마 전 금연운동단체들은 담배 제조와 매매를 금지하는 공개 청원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담배는 독극물 마약이니 정부가 나서서 금지하고 특단의 관리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담배가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고 간접흡연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담배가 독극물이라거나 금연=선, 흡연=악이라는 이분법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때론 독이 약으로 쓰이듯, 세상일이란 그리 단순하게 일도양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담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인 광해군 무렵입니다. 그 뒤 담배는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즐기는 기호품이 되었는데, 이런 사정은 정조 때 문장가 이옥이 남긴 <연경(烟經)>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담배의 경전’이란 뜻의 <연경>은 담배 재배방법부터 올바른 흡연습관에 이르기까지 담배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입니다.

문학적인 소품문을 특히 잘 썼던 이옥은 그 때문에 문체반정을 내세운 정조의 미움을 사서, 빼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불우한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답답한 그 세월 때문인지 몰라도, 그는 <연경>이란 책을 쓸 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애연가였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를 문책한 정조 역시 신하들에게 담배의 이점을 역설하는 ‘남령초(담배) 책문’을 내릴 정도로 소문난 골초였다는 사실입니다.

정조는 학문과 나랏일에 몰두하느라 가슴이 막히는 병을 얻었는데 담배 덕분에 이 고질병에서 해방되었다며 담배를 상찬합니다. 그에 비해 이옥은 좀더 문학적입니다. 담배 피우기 좋은 때를 열거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산골짜기 쓸쓸한 주막에 노파가 밥을 파는데 벌레와 모레를 섞어 찐 듯하다. 반찬은 짜고 비리며 김치는 시어 터졌다.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참자니 먹은 것이 위에 얹혀 내려가지 않는다. 수저를 놓자마자 바로 한 대를 피우니 생강과 계피를 먹은 듯하다.” 

예전에 식후불연초면 삼대고자 운운하며 밥숟갈을 놓기 무섭게 담배를 피우던 친구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역시!’ 하고 고개를 끄덕일 듯합니다. 하지만 그 친구들 중에도 이제는 담배를 피우는 이가 드뭅니다. 전 국가적으로 진행되는 금연운동의 흐름에 자의반 타의반 동참한 것이지요. 덕분에 온몸에서 담배 냄새를 풍기는 일도 사라지고 건강도 챙기게 되었으니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뜻이라 해도 정부가 나서서 금지하고 강제하는 일은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옳습니다. 금지는 억압을 부르고 억압은 저항을 낳으며 결국 다툼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강제로 담배를 끊는 세상보다 타인을 배려해 흡연을 삼가는 세상이 더 살기 좋은 세상임은 분명할 터. 그러니 애연가는 다른 이들을 위해 금연하고 금연가는 애연가를 격려하면 어떨까요. 그럼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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