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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받을 때 -『심양장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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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받을 때 -『심양장계』

노바리 2010. 1. 29.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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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최고의 비극적 인물이라 해도 좋은 소현세자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똑같이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사도세자의 경우, 아내인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을 쓰고 그 아들 정조가 아비의 복권을 꾀하며 이런저런 소회를 밝힌 것이 있지만, 소현세자는 자신도 아내도 아들들도 아무 말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역적으로 몰려 처가는 풍비박산이 나고 세 아들 중 둘은 먼 제주 땅에서 어린 나이에 죽었으니 그를 위해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근년에 완역본이 나온 『심양장계』는 그런 점에서 주목을 끕니다. 침묵에 가려진 소현세자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록 중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더욱이 『심양장계』는 인질로 끌려가던 날부터 8년간의 억류생활을 낱낱이 기록하여, 17세기 조선과 청의 생활상은 물론 한양과 심양 사이의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확인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자료이기도 합니다.


천 쪽이 넘는 『심양장계』는 소현세자를 수행한 세자시강원 관리들이 청국의 수도 심양에서 조선의 왕에게 보낸 장계(狀啓)1), 즉 보고서를 모은 책입니다. 때론 하루에도 3,4통씩 써 보낸 장계에는 세자 일행의 일거수일투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어찌나 꼼꼼한지 입이 딱 벌어집니다. 그처럼 상세한 보고서를 거의 매일같이, 그것도 청국의 검열과 본국의 사정까지 헤아리며 썼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새삼 그 노고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수고롭다 한들 소현세자에 비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심양장계』를 보면, 심양에서의 소현세자는 단순한 인질이 아니라 조선정부를 대표한 외교사절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청나라에 끌려온 조선 백성들의 유일한 버팀목이자 대변자였고, 조청 간의 크고 작은 분쟁을 해결하는 외교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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