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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는 역사도 바꾼다 -한국일보 1.16 본문
아파트 출입문에 안내문이 붙었다. 보일러 연통에 달린 고드름이 떨어져 사람이 다칠 수 있으니 가급적 건물에서 뚝 떨어져 걸으라는 것이다. 몇 년간 따스한 겨울이 이어졌기에 처음엔 추운 날씨가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영하 15도의 추위에 머리 위 고드름까지 조심해야 하니 어서 날이 풀렸으면 싶다.
지구 온난화라면서 왜 이런가 했는데, 이 또한 온난화 때문이란다. 온난화와 엘니뇨현상으로 습기가 많아지면서 폭설이 내렸고, 이 눈이 햇빛을 반사해 기온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반면, 현재의 한파는 온난화와는 상관이 없고 소빙기(小氷期)가 다가오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겨울철 한파와 기상이변이 잦아질 것이라는 데는 양쪽 다 동의하는 듯하다. 그 말대로라면 지금의 추위는 시작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3백여 년 전인 1670~1671년, 한반도에서는 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죽었다. 1695~96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이유는 전쟁도 대량살상도 아닌 기근이었다. 불과 20년을 사이에 두고 끔찍한 대기근이 연거푸 조선을 강타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 시기를 다룬 역사서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는 그 이유를 기후에서 찾는다. 이 무렵 지구는 소빙기에 있었다. 소빙기란 빙하기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지구 기온이 내려가서 빙하가 늘어나고 기상이변이 잦아지는 시기를 말한다. 시각에 따라서 길게는 14세기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짧게는 16~18세기를 소빙기로 보는데, 브라이언 페이건 같은 학자는 프랑스혁명도 전해의 혹한이 영향을 미쳤다며 소빙기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소빙기의 조선은 잦은 기상이변에 시달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봄에 눈과 서리, 우박이 내리고 심지어 여름에도 냉해와 함께 눈이 왔다는 기록들이 보인다. 자연재해는 농작물 감소로 이어져 기근을 불렀고, 가축과 사람들 사이에 전염병이 돌면서 수백만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그러나 이 시기가 죽음과 어둠의 시대였던 것만은 아니다.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과정에서 진휼청 같은 상설 구호기관이 생기고, 춘궁기에 미리 곡식을 꿔주는 다양한 대출제도가 도입되었는데, 이는 다음 영․정조 시대의 부흥을 낳는 밑거름이 되었다. 또 양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동법을 시행해 시장경제를 앞당긴 것도 이 시기이며, 허준이 값싼 약재를 이용한 우리식 치료법을 담아 <동의보감>을 펴낸 것도 이때였다. 위기가 새로운 출발의 모태였던 셈이다.
<실록>에는 기근이 절정이던 1671년 봄, 굶주린 엄마가 어린 남매를 삶아먹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전한다. 인륜을 최고로 치던 조선왕조였다. 그러나 왕과 조정 신하들은 패륜의 어미를 탓하는 대신 진휼을 잘못한 지방관을 문책했다. 궁지에 몰린 백성보다는 지배층의 책임을 무겁게 여긴 것인데, 법을 어긴 재벌 총수가 사면을 받자마자 “사회 각 분야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훈계하는 시대에는 기대하기 어려운 책임의식이다.
조선의 왕들은 기상이변이 일어날 때마다 ‘부덕의 소치’라며 스스로를 탓했다. 물론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지만, 오늘날에도 이상기후가 왜 발생하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정확히 아는 과학자는 없다. 사정이 이렇다면 자연과 세상 앞에 오만하기보다는 자연재해조차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는 옛사람의 마음이 더 과학적이지 않을까. 작은 나비의 날갯짓에도 폭풍이 불고 폭풍이 국가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고, 과학과 역사는 가르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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