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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연재칼럼

그 많던 범들은 어디로 갔을까?

노바리 2010. 1. 4. 09:56

새해가 밝았습니다. 경인년(庚寅年), 올해는 60년 만에 찾아온다는 백호랑이의 해입니다. 예로부터 범은 영물로 여겨졌는데, 특히 백호는 청룡, 주작, 현무와 함께 사신(四神)의 하나로 숭상되었습니다. 그런데 백호와 함께 신으로 섬겨진 청룡, 주작, 현무는 모두 상상의 동물입니다. 사신을 숭배하던 고대에는 백호가 상상의 동물이었는지, 아니면 청룡, 주작, 현무가 다 백호처럼 실재했는데 나중에 멸종된 것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청룡, 주작이 진짜 있었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 하겠지만, 한때 한반도의 산천을 주름잡던 범이 지금은 씨가 마른 걸 보면 영 터무니없는 이야기도 아닐 성싶습니다.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경복궁에 범이 나타날 만큼 호랑이는 흔한 동물이었습니다. 하지만 1910년부터 일제가 벌인 대대적인 소탕작전으로 수백 마리의 범과 표범, 늑대들이 몰살된 뒤 호랑이는 이 땅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 때문에 한국 범의 멸종을 추적해온 한 일본 작가는, 조선총독부가 산간 오지까지 개발하기 위해 범을 사냥한 탓이라며 사과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일본이 아니었다면 멸종까지는 안 됐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 선뜻 맞장구를 치기는 왠지 미안합니다. 근대 이후 이 땅에서 사라진 것이 범만이 아니요, 산간오지를 탐내는 개발로 지금도 멸종 위기에 신음하는 동식물이 한둘이 아니니까요.

 

고대 중국의 역사서인 <후한서> 동이전(東夷傳)에는 우리나라를 일러 “범을 신으로 받들어 제사 지내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범을 경외했는지 보여주는 기록이지요.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사정은 변합니다. 이전까지는 사람과 범이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며 평화롭게 공존했지만, 인간 중심적인 유학이 득세하고 농경지가 늘어나면서 범을 ‘해로운 짐승’으로 규정해 잡아 죽이기 시작한 겁니다.

 

하지만 범 몰이에 나선 사람들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선조 대의 문장가 유몽인이 지은 <호정문(虎穽文)>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박지원의 <호질>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 이 글에서 유몽인은 창귀(倀鬼 호랑이에게 죽은 귀신)의 입을 빌려 범을 변호합니다. 

 

“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것은 모두 하늘이 낳아서 살게 한 것인데 어찌 사람이 그것을 해친단 말입니까. 돌과 나무와 물고기가 무슨 죄가 있어 괴롭히며, 짐승이 무슨 죄가 있기에 화살로 쏘고 함정에 빠뜨리며 가죽을 벗깁니까? 사람은 동류끼리도 혀로 상처 입히고 무기로 찌르고 멸족까지 시키니, 무릇 사람의 포악함은 범보다 천 배나 더합니다.”

 

하지만 창귀의 이런 호소는 사냥꾼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늘은 사람에게만 하늘이지 인간 아닌 것에게는 하늘이 아니”라는 호통만 들을 뿐이지요.

 

인간을 한껏 조롱하는 박지원의 <호질>과 달리, 유몽인의 <호정문>은 어떤 비난에도 끄덕 않는 인간중심주의를 일종의 체념 섞인 객관성으로 그려냅니다. 사람은 잔인하며 그 잔인함마저 하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존재라는 비관론을 피력했던 유몽인은, 인조반정 뒤 서인 정권에 의해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동류끼리도 죽이고 멸족시키는 게 인간이라는 그의 비판은 자신의 비극적 최후를 예감한 탄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시대로부터 4백 년이 지난 지금, 이 땅에서 범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일설에는 비무장지대에 범이 있다고도 합니다. 인적이 끊어지면서 뭇 생명들에게 지상 최고의 낙원이 된 곳이 비무장지대이니 범이 살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없어야 생명이 살 수 있다는 건 참 슬픈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