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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숨은 책방
사무치게 아름다운 문장을 읽다 -주간경향 본문
<천천히, 스미는>, 봄날의책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아서 결국 눈으로만 읽게 되는 책이 있다. 낱말 하나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구절들에 마음을 모으면 시간은 느려지고 근심은 잊힌다. 아주 가끔 만나는 기쁨, 글을 배워서 참 다행이구나 싶은 순간이다. 지난 세기 영미 작가들의 산문 32편을 모은 <천천히, 스미는>은 그런 드문 기쁨을 주는 책이다. 산목숨은 위태롭고 죽은 목숨은 모욕당하는 시대에 한가롭게 책 읽는 기쁨을 운운하느냐, 누군가는 힐난할지 모른다. 하지만 전후의 폐허, 냉전의 한가운데서 짝짓는 두꺼비에게 눈길 주었던 조지 오웰이라면 이 한가한 기쁨을 탓하지 않으리라.
자연을 즐기는 걸 감상적이라 비판하는 이들에게 그는 “모든 즐거움을 없애버린다면 우리는 대체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냐고 반문한다. “공장에는 원자폭탄이 쌓이고 거리에는 경찰들이 어슬렁대고 확성기에서는 거짓말이 쏟아져 나와도 지구는 여전히 태양 주위를” 돌고 “자연은 무허가로 존재”하고 있으니 “독재자도 관료도 이런 변화를 막지 못한다”면서.
그가 말했듯, “가장 누추한 거리에도 봄은 온다.” 제 잇속을 차리고 세상을 속이느라 누추해진 언어에도 아직 아름다움이 남아 있는 것처럼. 그 아름다움에 마음의 밑줄을 긋는다.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운율은 있다. 병에도 운율이 있다.”
“한 사람은 내게 다정한 우리 엄마, 한 사람은 내게 다정한 우리 아빠. 어쩌다 여기에 그들이 있다. 모두 이 지상에. 모두 이 지상에 있는 이 슬픔을.”(제임스 에이지)
원망과 분노로 들끓던 마음이 고즈넉해진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들에게 커다란 슬픔을 안겨준 이들에게 이 문장을 전하고 싶다. 우리 모두 이 지상에서 이 지상에 있는 슬픔을 겪고 있음을 떠올릴 수 있도록. 누군가는 위로 받을 것이고 누군가는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밀물과 썰물로 다가오는 생의 운율이 어느 날엔가는 필경 이 진실을 깨닫게 할 것이다. 밀물의 삶에 익숙해져서, 혹은 모처럼 찾아온 밀물의 삶을 놓치기 싫어 썰물의 허허로운 풍경을 등지고 있다면, 아무 일없이 무사한 생을 꿈꿨던 내 가슴에 도끼처럼 내리꽂힌 문장을 읽어주련다.
“기쁨은 우리에게 오는 길에 이미 우리를 떠난다. 우리의 삶도 차고 질 것이다. 우리가 현명하다면 삶의 리듬에 따라 깨고 쉴 것이다. 모든 것을 지배하는 법칙에 우리도 지배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앨리스 메이넬)
잘 꾸민 언어에 무뎌졌던 마음이 투명하고 정직한 언어에 흔들린다. 과연, 정직은 최상의 방책이다. 내 언어가 당신 마음에 전해지지 못했다면, 당신의 언어가 우리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면, 그것은 기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삶의 진실을 읽지 못한 어둔 시선 때문이고 허튼 말로 마음을 얻으려 한 얄팍한 욕심 때문이다. 그 밑바닥에는 산처럼 생각하는 법을 모르는(알도 레오폴드) 인간의 어리석음이 있다.
늑대를 죽이는 것은 사슴마저 죽이는 것이며, 한 그루 나무를 베는 것은 나무만이 아니라 그 나무가 이고 있던 하늘까지 베어내는 것(소로우)임을 모르는 무지가 있다. 영영 모르면 좋겠지만, 이 지상의 운율은 우리가 지은 죄를 우리에게 일깨운다. 그러니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말라고, 사무치게 아름다운 문장이 우리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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