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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숨은 책방
유럽여행-파리 본문
프랑크푸르트에서 파리는 고속열차 ICE를 타고 갔다. 애초 웹투어에서 예매해준 것은 9554호 열차인데 전광판에 적힌 같은 시간대 차번호가 달라서 잠시 걱정. 하지만 열차는 딱 그것뿐이라 그냥 탔다. 다행히 중간에 차 번호가 정정된다. 열차는 몇 정거장을 거치며 만석. 건너편 옆자리의 터키 남성이 짐을 올리고 내릴 때마다 엉덩이를 보이는 바람에 난감했다. 왜 팬티가 다 보이게 청바지를 입는지, 하여튼 패션스타일이라기엔 참...
파리 동역에 도착해 티켓판매소로 가니 바로 앞에 한국 여학생이 있다. 독일 마인츠에서 교환학생으로 법을 공부중이라는데 예쁘고 똑똑해서 기분이 좋아진다. 그녀가 지하철표 열 묶음짜리 까르네를 사는 걸 보고 그대로 따라해서 우리도 까르네를 샀다. 그녀는 몽마르뜨의 숙소로 우리는 오페라역 근처 숙소로. 웹투어에서 예약해준 호텔은 위치가 좋다. 오페라역 근처는 걸어서 15분 거리에 콩코드 광장이 있고, 조금 더 걸으면 세느강을 건너 상젤리제으로, 또 튀를리 공원에서 오르세 미술관으로 통한다. 루브르에서도 멀지 않고. 나중에 간 로마 호텔은 테르미니 역 근처라 역시 다니기에 좋았다.
le pera 호텔은 작고 정감있고 방음이 좋은 반면 콘센트의 전류가 들쑥날쑥해서 충전에 애를 먹었다. 오후 7시가 됐지만 여전히 날이 환해서 여장을 풀고 거리로 나왔는데 걷다보니 바로 오벨리스크가 우뚝 선 콩코드광장이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에서 사진을 찍으려니까 귀엽게 생긴 아가씨가 찍어주겠단다. 사진을 세 장 찍고는 마음에 드냐고 확인까지 하는데 따스한 미소가 마음을 환하게 한다. 주위는 차와 사람들로 복잡하지만 오벨리스크와 분수가 있는 광장 가운데는 널찍하니 한가해서 마음껏 감상에 젖을 수 있다.
오벨리스크 한쪽 면에 아마도 이걸 파리로 옮기는 과정을 묘사한 듯한 그림을 금박으로 새겨넣었다. 나중에 로마에 갔을 때도 이집트에서 가져온 여러 개의 오벨리스크를 볼 수 있었는데, 이곳처럼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것은 없었다. 넓은 광장 한복판에 세워서 그 위용을 마음껏 느낄 수 있게 배치한 덕이다. 약탈당한 이집트를 떠올리면 가슴아픈 일이지만... 광장을 가로질러 좀더 걷자 바로 세느강이다. 유람선이 오가는 강은 아름답다! 강 건너편 중앙에 국민의회 건물이 버티고 서 있다. 그걸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이번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던 아가씨가 찍어주겠다고 자청한다. 파리 여성들은 자신있고 적극적이구나 싶다. 그에 비하면 독일 여성은 수줍은 느낌. 하지만 모두들 친절하다. 여행하면서 내내 느낀 것이지만 남성들은 미인에겐 친절해도 아줌마에겐 별로 그렇지 않은 반면, 여성들은 세 나라 모두 여성인 내게 친절했다. 역시 자매애는 강하다(sisterhood is powerful)!
국민의회 건물 벽에 붙은 명판. 나치에 맞서 파리 해방을 위해 싸우다 죽은 대학생을 기리고 있다.
평일인데도 세느강변은 술 마시고 담배 피는 사람들로 인산인해. 와인과 맥주를 여러 병씩 사들고 강변으로 가는 이들도 한둘이 아니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필경 언론에서는 나뒹구는 담배꽁초와 술병들을 클로즈업하며 '실종된 시민의식' '흥청망청 술판' 운운하며 비분강개하리라. 독일에서도 그랬는데 파리에 오니 더욱더 그 자유로움이 사무치게 부럽다.
다음날 루브르에 갔다가 마음껏 사진을 찍고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하는 걸 보고 다시 한번! 우리 국립박물관에 갔다가 어두침침한 전시실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유물을 잔뜩 주눅들어서 보던 게 떠올랐다. 사진 찍지 말라, 떠들지 마라,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라 같은 숱한 금지들에 길이 난 내게는 금지가 없는 이 문화가 그저 놀랍기만 하다. 금지만 없는 것이 아니라 시시콜콜한 안내도 없다. 버스나 지하철은 거의 안내방송이 없다. 전광판 안내 표시도 새 기차에만 있을 뿐. 로마도 마찬가지다. 우리처럼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로 친절하게 일러주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래도 다들 알아서 내리고 탄다. 어른이라면 그 정도는 다들 할 수 있고, 혹시 자기 불찰로 못 내리면 그건 자기 책임이라는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도 일러주고 지시하다 보니 자기가 실수를 했어도 남탓을 한다. 안내가 잘못 되었다느니 부실했느니 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어른들의 사회를 경험하자 비로소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아이처럼 대우받고 살았는지를 알겠다.
권위주의체제란 인간을 스스로 사고하는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미숙아로 여기며, 지배층이 그들을 대신해 판단하고 결정하는 걸 당연시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체제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도.
드농관 입구의 니케상
여행 가기 전 유럽을 다녀온 이들에게 물었다. "루브르 꼭 가야돼? 아니, 너무 커서 찔금 맛만 좀 보다 말고 오는 셈이라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야. 바티칸박물관은? 꼭 가야 돼." 그래서 갈까 말까 망설이다 그래도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안 가나 싶어 갔다. 근데 안 갔으면 어쩔 뻔!! 루브르에서 5시간 동안 쉼없이 돌아다녔는데 정말 엄청난 감동을 받았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보기 좋은 한글 안내문이 있어서 그걸 들고 드농관부터 시작했다. 긴 주랑을 들어갈 때부터 가슴이 벌렁거리더니 정면에 니케상이 시선을 압도하는 순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 등 프랑스의 유명 전시관을 다니면서 가장 감탄한 것이 전시기술과 행정이었다. 전시 큐레이터가 얼마나 중요하며, 공간배치가 작품 감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니케상을 지나쳐 전시실에서 처음 나를 사로잡은 것은 보티첼리의 그림. 이전까지 보티첼리에 아무 관심도 없었으나 그 실물을 보자 눈물이 나왔다. 이걸 직접 보는구나, 하는 감격까지 더해져서. 이후론 무아지경. 정말 내 허리와 다리가 로봇이었으면 싶었다. 모나리자가 있는 방을 그냥 지나쳤다가 다시 찾아가서 '친견'했을 때는 기다림의 시간이 보태져 더욱 감동. 작은 그림 앞에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것도 아우라의 현현인 듯 여겨지고. 밀로의 비너스상 앞에서도 플래시 세례가 요란한 것이 거슬리기보다 오히려 비너스가 그런 소란을 도도히 즐기는 듯한 남다른 느낌을 주었다.
이집트 전시실은 규모가 너무 커서 놀랐다. 세상에, 이렇게 다 빼오면 이집트엔 뭐가 남았을까 싶을 만큼. 나중에 바티칸에 가니 거기도 또 있다! 아이고, 불쌍한 이집트!
정교하게 만들어진 미라.
지하에 있던 이슬람 문명 전시관. 깔끔하고 섬세한 모자이크, 양탄자, 황금비늘 갑옷 등이 화려하다
박물관 복도에서 현장을 그리는 화가. 관람객들에게 유쾌한 즐거움을 주는 멋진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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