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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이런 인생도 살 가치가 있을까? -주간경향 8월

노바리 2013. 8. 2. 17:46

 

-이언 브라운, 전미영 옮김, <달나라 소년>, 부키, 2013

 

 

나이가 드는 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을 배우는 거구나 싶을 만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비상식적인 정치에 대한 무력감은 물론이요, 내 맘 같지 않은 부실한 몸, 어린애 하나도 어쩌지 못하는 사소한 무력감이 자꾸 마음을 흔듭니다. 굳은 의지로 노력하면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는데 내 몸도 관계도 다 어찌할 수 없다 싶으니 쓸쓸해집니다. 우연히 만난 <달나라 소년>이 아니었다면 아직까지 쓸쓸함 속에서 허우적댔을 터, 언제나처럼 책이 약이 됩니다.

 

<달나라 소년>은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이언 브라운이 심장-얼굴-피부 증후군(CFC)이라는 유전병을 앓는 아들을 키우며 쓴 책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엔 장애를 통해 단단해진 가족애나 장애가 오히려 축복이 되는 놀라운 섭리의 이야기이리라 짐작했습니다. 뻔하다 싶었지요. 그러나 책 첫머리에서, “이 아이와 같은 삶에 도대체 어떤 가치가 있을까?”라는 신랄한 물음을 보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무력한 삶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정말 궁금하더군요. 제 머리를 때리는 제 팔 하나도 어쩌지 못하는 존재에게 가치가 있다면 내가 겪는 무력함쯤은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요.

 

브라운은 전 세계에 환자가 백 명 남짓뿐인 희귀병을 앓는 아들 워커를 키우는 것을 “물음표를 키우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의사들도 아는 게 없고 비슷한 환자를 본 적도 없는 생소한 질병에 대한 물음표이고, 이해도 소통도 불가능한 아들에 대한 물음표이며,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표입니다. 그는 하이테크 의학이 없었다면 생존이 불가능했을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애쓴 것이 잘한 일인지, 고도의 보살핌과 막대한 비용이 드는 아들의 생존을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지, 무엇보다도 아들의 “둔감한 표정 아래 알맹이가 정말로 존재”하는지, 그에게 “내면의 삶이 있는지” 묻습니다.

 

아버지는 그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아들의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고, CFC 환자들을 찾아다니고, 프랑스까지 가서 새로운 장애인 공동체 라르슈를 창설한 장 바니에를 만납니다. 길고 힘든 그 여정은 답을 찾는 과정이자 새로운 질문에 봉착하는 과정입니다. 그는 어린 CFC 아들을 남겨놓고 마흔둘에 암으로 세상을 뜬 어머니에게서 자신의 오랜 불안을 보며, 워커를 유전적 질서교란으로만 인식하는 유전학자들에게 커다란 불만을 느낍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아들과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들의 의미를 찾으며, 아들이 “약한 고리가 아니라 초강력 연결고리”가 되는 바니에의 희망을 봅니다.

 

그러나 그는 쉬 낙관하지 않습니다. 과학도 종교도 신봉하지 않는 그는 유전학이 약속하는 미래에 대해서도, ‘특별한 아이’를 주신 신의 은총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대신 그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통합된 세상, 즉 ‘워커가 사는 느린 삶,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유일한 강령인 삶’으로 들어가 함께 사는 꿈을 꿉니다. 그는, 자신이 그랬듯이, 거기 사는 것만으로도 비장애인들은 세상을 보는 방식이 바뀌고 많은 걸 얻을 거라고 장담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 꿈을 주장하는 대신 그저 공상일 뿐이라 말합니다. 큰소리로 주장한다고 워커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을 바꿀 순 없음을 알기 때문이지요.

 

오늘도 그런 세상을 살아야 하는 아버지는 아픈 아들을 껴안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가 죽을 때 이럴 것이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워커와 가장 가까이에 있다. 아들과 나 사이에 공간은, 기대나 실망은, 실패나 성공은 이제 없다.”

그 모습을 보며 깨닫습니다. 무력함이 힘이 되는 그날까지 참으로 먼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더 이상 무기력하게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