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생명으로의 여행 -2018.7월호 나라경제
오래된 생명으로의 여행
<위대한 생존>
모두가 떠나는 계절, TV에선 하루 종일 근사한 이국의 풍광과 먹거리를 보여주고 여행객들로 붐비는 공항을 중계한다. 아, 나도 뜨거운 햇볕과 숨 막히는 대기를 피해 떠나고 싶다. 하지만 이산화탄소를 대량 배출하는 비행기 여행은 갈수록 더워지는 이 땅을 더욱 뜨겁게 만드는 요인임을 기억한다. TV를 끄고 도서관으로 간다. 지구를 지키면서 더위에 지친 심신도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 거기 있다.
과연, 시원한 도서관에 들어서자 땀 젖은 몸이 개운해진다. 이제 마음을 시원하게 할 책만 찾으면 된다. 서가에 빼곡한 책들 사이로 책 한 권이 툭 튀어나와 있다. 「위대한 생존」이란 사진집이다. 슬쩍 책장을 넘기다가 사로잡힌다.
보기만 해도 몸이 차가워지는 ‘남극 바다와 송어의 피’로 시작해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지는 ‘섀클턴 묘 앞의 코끼리바다표범’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풍경이 가득하다. 도대체 무엇을 찍은 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진들도 많다.
모두 사진작가 레이첼 서스만이 10년 동안 과학자들과 협업해 찾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들’이다.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면, 적게는 2천살에서 많게는 60만살이나 됐다 한다. 2천이든 60만이든 100년을 살기 힘든 인간으로선 상상이 안 되는 시간이다.
상상하기 힘든 것은 막막한 시간만이 아니다. 그린란드의 지의류가 100년에 1㎝씩 자란다거나, 남극너도밤나무가 1억8천만년 전 추위를 피해 남극에서 북쪽 호주로 ‘이주’해왔다는 이야기는 읽어도 믿기 어렵고, 트리니다드 토바고 바닷속에 있는 뇌산호와 지상에서 가장 건조한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야레타는 아무리 봐도 둥근 바위나 초록 조형물 같아서 생물체에 대한 내 모든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숲처럼 보이지만 전체가 한 그루인 사시나무 판도(8만살), 땅속에 몸통을 숨긴 채 붉은 대지에 잡초 같은 잎들만 드러낸 아프리카의 지하 삼림(1만3천살), 메마른 사막 위에 말라비틀어진 화초처럼 드러누운 웰위치아(2천살)를 보는 순간 나무에 대한 기존 지식은 먼지처럼 흩어진다. 5,068년을 살아낸 브리슬콘 파인이 “극단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생존해온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조건 ‘덕분에’ 생존했다”는 사실은 생존에 대한 상식을 뒤흔든다.
서스만이 아시아·아메리카·아프리카·유럽·호주·남극의 산, 들, 바다, 사막을 오가며 찾아낸 30종의 최고령 생물들은 이렇게 나의 앎과 믿음과 상상을 넘어 전혀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나를 데리고 간다. 그 세계는 놀랍고 두렵고 감동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무지를 절감케 한다.
동네 도서관 한구석에서 나는 지구의 오랜 침묵을 듣고 내가 모르는 지극한 아름다움을 본다. 때론 머묾이 떠남이 된다는 걸 오래된 나무에게서 배운다. 이 이상의 여행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