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산문의 길 스타일>을 읽고
F.L. 루카스, 「좋은 산문의 길, 스타일」
내가 선호하는 작가는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쓰는 일이 결국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점과 … 이름난 작가보다 평범한 주부가 삶으로부터 더 많은 의미를 주고받기도 한다는 점을 깨달은 자이다. - p.154
편집자로 남의 글을 만지다가 내 글을 쓰겠다고 나선 지 십 년이 훌쩍 넘었다. 시작할 땐 십 년쯤 지나면 글을 제법 쓰는 어엿한 작가가 될 줄 알았다. 천만의 말씀이다. 쉬지 않고 쓰는데도 갈수록 글쓰기가 어렵고 잘 쓰지도 못한다. 답답한 마음에 원고 마감을 코앞에 두고 ‘글쓰기 지침서의 고전’이라는 「좋은 산문의 길, 스타일」을 읽기 시작했다. 일곱 개 언어에 정통한 언어학자요 작가인 F.L. 루카스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했던 글쓰기 강연을 모은 책인데, 1955년에 출간된 뒤 1960, 1970년대에 수차례 개정증보판이 나오고 이 중고본들이 고가에 거래되면서 2012년에 복간됐다 한다. 문장에도 유행이 있는데 이렇게 긴 세월을 살아남은 비결이 궁금했다. 읽어보니 알겠다. 문장의 힘이다. 군더더기 없고, 눈치 보지 않고, 단정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저자는 좋은 글을 쓰고 싶으면 인격부터 챙기라고 말한다. 책 첫머리에 “문체의 시작은 인격”이라고 못 박을 정도다. 내 경우 책을 만들면서 작품의 질과 작가의 인성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글을 쓰면서 그걸 매일 확인하고 있는 터라 깜짝 놀랐다. 작가들을 겪어본 많은 편집자와 기자들 역시 비슷한 고백을 하는 걸 보면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가끔은 그래서 맥이 빠진다. 좋은 글을 쓰려는 노력이 좋은 인간이 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도대체 열심히 글을 쓰는 이유가 뭔가 싶어서.
그런데 저자는 정반대의 얘길 한다. “문체는 단어라는 옷을 입은 인격이고 사람 됨됨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법이니 작가가 뛰어난 재간으로 비열함을 감출 수는 있어도 “모든 독자를 줄곧 속이기는 쉽지 않다”고. 따라서 글쓴이의 인격은 실제로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도덕군자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윤리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하고 사람은 선악이 뒤섞인 복잡한 존재인 데다 독자의 눈이 언제나 밝은 것도 아님을 그는 잘 안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 어디서나 작가에게 요구되는 자질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독자에 대한 예의, 진실함, 유쾌함, 활력 같은 것들이다.
특히 저자는 독자에 대한 예의를 강조한다. 쓸데없이 길고 난해한 문장으로 독자의 시간을 뺏고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이나, 제 주장을 강요하고 가르치려 드는 자만심 섞인 태도는 독자에 대한 대표적인 무례다. 그는 “진정한 예의 바름이란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므로 명료하고 간결한 문장, 허식 없는 소박한 문장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확한 비유와 다양한 표현을 쓰는 것도 독자에 대한 예의다. 그래야 독자가 지루하지 않게 읽는 재미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의 책이지만 읽는 내내 낯을 붉히며 밑줄을 그었다. 정확한 문장보다 그럴싸한 문장을 쓰고 싶은 욕심,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들키기 싫은 두려움이 내 글은 물론 나 자신도 망치고 있음을 깨달은 까닭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글을 써보라. 당신의 문장이 당신의 인격을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