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칼럼

흡연자를 죄인시하는 풍토에 반대합니다

노바리 2017. 8. 22. 15:50


엘리베이터 안에 전단지가 잔뜩 붙어 있습니다. 시설관리와 쓰레기 수거, 방역에 관한 안내문들 옆에 세대 흡연을 자제하라는 경고문이 있습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지난 9일 국토부가 세대내 흡연을 규제하는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발표했을 때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담배의 위해성이나 간접흡연의 폐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흡연자를 범죄자 취급하며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소홀히 여기고, 어떤 문제를 금지로 해결하려는 방식은 건강한 사회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자유라니, 타인의 건강을 해치는 자유까지 보장해야 하느냐고 반박하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자유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건강과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지 안다면 그리 쉽게 비난하지는 못할 겁니다.


가령 미세먼지의 경우, 세계보건기구(WHO)는 미세먼지 오염으로 인한 전 세계 조기 사망자 수를 700만 명으로 추산하는데, 이는 담배로 인한 조기 사망자보다 많은 숫자입니다. 특히 한국은 OECD2020년경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률 1위 국가로 예측했을 만큼 환경오염이 심각합니다. 최근 발표된 한미 공동 대기 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오염의 주요인은 경유차 등 자동차 배출가스와 냉난방시설에서 나오는 가스이며, 그 외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소의 오염물질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급격히 판매가 주는 경유차가 한국에서는 갈수록 늘어 전체 자동차의 42%에 달하고, 요즘 인기인 SUVRV 차종의 99%가 경유차인 현실을 보면 이는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지요.


세먼지와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경유차를 사거나 혼자 대형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중에 자신이 타인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극히 적습니다. 미세먼지로부터 건강을 지키겠다며 공기청정기를 사용하고, 더위를 피하려 에어컨을 틀고, 1+1으로 산 음식물로 냉장고를 꽉꽉 채우는 행위가 문제라고 여기는 이들도 드뭅니다. 그런 일들이 전기 소비를 늘려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을 부추기고, 대기 질을 떨어뜨리고,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킨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최근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안전을 외면한 축산농가와 정부 당국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몇 달 전 이미 발견되었음에도 은폐와 무대책으로 일관하다 문제를 키운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소비자도 일방적인 피해자는 아닙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좁디좁은 닭장에 닭들을 몰아넣고 밤에 잠을 안 재우면서까지 알을 낳게 하는 공장식 밀집사육인데, 소비자들은 그걸 알면서도 달걀과 닭고기 등을 싼값에 즐기기 위해 외면해왔으니까요. 내가 키우는 동물은 반려자라며 귀히 여기는 이들도 닭과 돼지 등이 끔찍한 환경에서 기계처럼 다뤄지는 현실은 외면하고 오히려 그런 가축으로 만든 사료를 반려동물에게 먹입니다. 이런 환경은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같은 질병을 일으켜 매년 수만 마리의 동물들이 생매장당하고 메탄가스 증가로 온난화를 부추기지만 아무도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건 흡연자만이 아닙니다. 지금껏 살아온 대로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계속하면서, 원 없이 먹고 마시고 편안하게 살면서 안전과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우리 모두가 세상에 폐를 끼치고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안전하게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돈이 더 들더라도 원자력을 포기해야 하며, 동물복지 축산을 선택해야 하며, 더위와 추위를 감당해야 하며, 더 걷고 더 움직이고 덜 쓰는 불편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강제와 금지가 아니라 설득과 배려로 이뤄가야 합니다. 우리가 같은 몫의 권리와 책임을 나누어 진 동료 시민으로서 함께 변화해 간다면 그때야말로 모두가 정말 건강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