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풍경

10대의 정치

노바리 2017. 4. 22. 15:46

도서관으로 가는 길, 길가에 붙은 대통령후보 벽보를 본 여중생 둘이 이야기를 나눈다.

"문재인 안철수 둘 다 동성결혼은 안된다고 했다며?"

"진짜? 웃기다."

"그러니까 인구가 줄지. 인구가 준다고 야단이면서 동성끼리 결혼을 하지 말라고 하면 어떡해? 그럼 여기 살 수가 없잖아."

(난 인구가 준다는 말을 듣고 그애들이 동성동본 결혼 같은 걸로 오해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얘들아, 그게 아니고 동성애를 말하는 거야라고 가르쳐주고 싶은 걸 애써 참았다.)


"안 된다고 한다고 사랑을 안 할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들 그러지?"

"내 말이. 내가 만약 동성을 사랑한다고 쳐. 근데 나라에서 안 돼, 넌 여자랑 결혼하면 안 되고 남자랑 해야 돼, 그러면 내가 네, 알았습니다, 남자랑 할게요, 그게 돼냐?"  

(아무 말도 안 하고 꾹 참고 있길 얼마나 다행인가! 그애들은 모든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동성결혼은 안 된다고 금지하면 사람들은 사랑조차 할 수 없게 하는 나라를 떠날 생각을 할 뿐이며, 그렇게 이미 있는 인구도 지키지 못하면서 왜 인구 감소를 걱정하고 아이를 낳으라고 야단이냐는 것이었다. 얼굴이 붉어졌지만 기분은 좋았다.)


"두 사람은 안 됐으면 좋겠어."

"누구?"

"문, 안. 심이 훨씬 똑 부러진데, 여자 표가 많이 나오면 좋겠어."

"진짜 여성 정치인이 많으면 좋은데, 아, 난 요즘 너무 정치 생각만 해."

앳된 얼굴이 중학교 1학년쯤 돼 보이는데 어찌 이리 명민한지. 18세 선거권을 반대한 국회의원들이 이해가 된다. 이렇게 똑똑한 10대들을 무슨 수로 속인단 말인가. 너희들이 책 많이 읽고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이 아줌마보다 낫다. 그나저나 그애들은 못 가진 투표권을 가진 나. 아, 어떻게 하나, 이 한 표를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 새삼 고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