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책 안 팔리는 시대에 책 만드는 사람들 -주간경향

노바리 2017. 2. 15. 11:43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김연한 옮김, 유유출판사, 2017


새해 벽두에 한국에서 가장 큰 도매서적 중 하나인 송인서적이 부도가 났다. 안 그래도 힘든 중소출판사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한때 편집자로 일한 나는 책 한 권 만들어 파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속이 쓰렸다. 피땀 어린 돈을 날리고 기껏 만든 책마저 창고에서 먼지투성이가 되는 걸 지켜보는 심정이 어떨지… 조금이라도 돕고 싶어 책을 사기로 했다. 새 발의 피도 못 되는 줄 알지만 그렇게라도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은 그래서 산 책이다. 솔직히 일본의 1인 출판사가 어떻게 일하는지는 관심 없었다. 그저 피해 입은 출판사를 돕고 싶은 마음으로 샀는데 정작 도움을 받은 건 나였다. 한동안 잊고 있던 책 읽기의 재미를 되찾았을 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곰곰 생각하는 시간까지 가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은 제목이 말해주듯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는 일본의 소규모 출판사들을 취재한 책이다. (취재기 외에도 서점주인, 북코디네이터 등이 쓴 칼럼과 유명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인터뷰가 실려 있어 출판계 이모저모를 두루 엿볼 수 있다.) 편집자 출신인 저자 니시야마 마사코가 취재한 10개 출판사 대부분은 사장이 곧 직원인 1인 회사지만 개중엔 무려(!) 8명이 함께 일하는 꽤 큰 규모의 출판사도 있으며, 생긴 지 1년 남짓한 신생 회사가 있는가 하면 10년을 훌쩍 넘긴 중견 출판사도 있다. 도쿄에 사무실을 둔 곳이 많지만 작은 섬에 자리 잡은 곳도 있고 아예 오키나와에서 오키나와산(産) 책만 파는 경우도 있다. SNS 홍보를 고민하는 사장도 있고 처음부터 “가능한 안 하는” 걸 원칙으로 삼은 이도 있다. 만드는 책이 저마다 다르듯 출판을 하는 이유도 일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한데 책을 읽다보면 다른 점보다 비슷한 점이 더 많이 느껴진다. 아마 책과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가 닮아서일 것이다. 최근 1인 출판과 독립책방 등이 늘면서 이를 낭만적으로 소개하는 매체들이 많은데 이 책은 다르다. 니시야마가 만난 출판인들은 적은 돈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산다고 자족하기보다, “다음 책을 내는 것만이 목표인” 상태에 불안해하고 “이대로 좋은지 매일 자문자답”하며, “지속가능한 출판 시스템”을 고심하고, “압도적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그친다. 한국보다 훨씬 독서인구가 많은데도 그들은 “책이 사양산업”이 된 현실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과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독자층이 줄어들까봐 손해를 보면서도 책값을 올리지 않고,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뒤 “당연한 것을 의심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 띠지를 없애는 것 같은, 작지만 큰 결정들은 그런 고민의 결과다.



특히 나를 일깨운 것은, 책의 쓸모를 의심하며 ‘책이 없는 세상’을 꿈꾸던 사이다지북스 대표와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사토야마샤의 이야기였다. 사이다지북스 대표의 말처럼 “책의 역할이 사람을 다른 시공으로 데려가는 것”이라면 이제야말로 내가 읽은 책의 힘으로 다른 세상, 다른 인생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닌지, 그러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닌지, 새해의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