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힘이다!
셸던 솔로몬 외, <슬픈 불멸주의자>, 흐름출판
영화나 소설에서 임종의 자리는 흔히 용서와 화해의 대단원으로 그려진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잘못을 뉘우치고 미움을 털어내고 부질없는 욕심을 버린다. 죽음이 사람을 지혜롭고 착하게 만든다는 통념의 반영이고 재생산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죽음이 머지않은데도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지은 죄를 덮기 위해 새로 죄를 짓는 이들이 많다. 그들을 탓하고 비웃을 순 있지만 과연 나는 얼마나 다를까? 죽음 앞에선 돈도 명예도 권력도 심지어 사랑조차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왜 사람은 그걸 놓치지 않으려 마지막까지 몸부림칠까? 왜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에조차 삶의 미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문화인류학자 어니스트 베커는 그 이유를 죽음의 공포에서 찾았다. 마흔아홉으로 세상을 뜨기 직전 펴낸 <죽음의 부정>(1973)에서 그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죽음을 부정하고 초월하려는 무의식적 노력”이라고 말했다. 생전에 학생들은 그의 강의에 -학교 대신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열광했고 사후에 책은 퓰리처상을 받았지만 학계는 내내 냉담했다. 당시로선 낯선 학제적 연구 스타일, 무엇보다 죽음이란 주제가 문제였다. 이는 10여 년이 지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1984년 셸던 솔로몬 등 세 명의 심리학자가 그의 연구를 기반으로 ‘공포 관리 이론’을 발표했을 때 심리학계는 침묵으로 외면했다. ‘증거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베커가 죽는 날까지 포기하지 않았듯 후학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30년간 공동연구를 계속했고 마침내 <슬픈 불멸주의자>를 증거로 내놓았다. 온갖 분야의 자료가 망라된 이 책은 종교, 문화, 철학, 정치, 경제, 식습관까지, 모든 인간 행동의 바탕에 죽음의 공포가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고대 도시의 발달부터 20세기 파시즘의 지배까지 인류 역사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인간 심리에 드리운 공포의 그림자를 증명한다.
실험에 따르면 죽음을 떠올렸을 때 사람은 비싼 사치품에 더 관심을 보이고, 국가와 사회의 기존 가치를 더 신봉하며, 이민족이나 소수 집단에게 더 배타적이 된다. 돈, 국기, 십자가 같은 문화적 사물체계가 공포를 완화시키기 때문이다. 부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주어 공포 관리에 꼭 필요한 자존감을 높이며,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심은 불안한 개인에게 집단적 불멸성이라는 안전판을 제공한다.
허나 안전판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고(사람은 결국 죽는다!) 오히려 자기기만과 도취, 환상을 부추긴다. 대개의 인간은 이를 안다. 그래서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쓸쓸한 줄타기를 하며 삶이 자신을 속일지라도 노여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자존감이 낮고 두려움에 압도된 사람은 현실을 외면하고 약물 등에 중독되며 때론 공동체 전체가 눈먼 환상을 좇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불안한 시기에 죽음으로 위협하고 국가적 불멸을 약속하는 독재자가 득세하는 것도, 대량학살이 벌어지고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이 땅의 현실이 그래서 두렵지만 다행히 이제 시작이다. 가짜 불멸의 민낯이 드러난 지금, 진짜 삶을 시작할 기회다.
-----주간경향, 2017, 1월. 의미있는 내용은 많고 글자수는 제한되어 있어 적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그중에도 히틀러, 레닌 같은 독재권력이 사자(죽은 자) 숭배를 부추겼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걸 읽는 순간 북조선의 거대한 동상과 사자 숭배, 일본 우익정권의 신사 참배가 떠올랐고,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사자 숭배가 떠올랐다. 죽은자를 숭배하며 그의 이름으로 산자들의 정치를 하는 것은 이제 끝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