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북리뷰] 과학이 설명 못하는 마음의 우주
노바리
2016. 7. 21. 14:25

엑시덴탈 유니버스
앨런 라이트먼 지음·김성훈 옮김 다산초당·1만4000원
앨런 라이트먼 지음·김성훈 옮김 다산초당·1만4000원
원래도 비관적인 편인데 요즘 들어 부쩍 더하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절감케 하는 때 이른 폭염, 원자력발전소 밀집지역 인근에서 발생한 강도 높은 지진,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사드 배치, 여기에 몇 달째 계속된 병까지 겹쳐 몸도 마음도 심란하다. 지구 걱정 나라 걱정을 하며 이 책 저 책 들춰보지만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그저 이 괴로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을 뿐. 그 마음이 가리키는 대로 책 한 권을 꺼내 펼친다.
“하나의 우주 안에도 일부는 보이고 일부는 보이지 않는 여러 개의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
짧은 머리글을 읽는 사이 소란하던 안팎이 고요해진다. 눈앞에 펼쳐진 다른 우주, 제목처럼 우연히 만난 <엑시덴탈 유니버스>다.
책을 쓴 앨런 라이트먼은 오전에는 물리학, 오후에는 문학창작을 가르치는 이론물리학자 겸 소설가로, 이 책은 그의 남다른 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200쪽에 불과한 얇은 책에 다중우주, 암흑에너지, 힉스 보손 같은 어려운 물리학 개념부터 푸코의 진자, 파울리의 중성미자, 맥스웰의 방정식 등 과학사의 주요 성과들이 두루 언급되었으니 머리에 쥐가 날 만도 하건만 천만에! 나 같은 과학 지진아가 책장 넘어가는 걸 아쉬워할 만큼 문장은 유려하고 고민은 깊으며 생각은 자유롭다.
책을 쓴 앨런 라이트먼은 오전에는 물리학, 오후에는 문학창작을 가르치는 이론물리학자 겸 소설가로, 이 책은 그의 남다른 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200쪽에 불과한 얇은 책에 다중우주, 암흑에너지, 힉스 보손 같은 어려운 물리학 개념부터 푸코의 진자, 파울리의 중성미자, 맥스웰의 방정식 등 과학사의 주요 성과들이 두루 언급되었으니 머리에 쥐가 날 만도 하건만 천만에! 나 같은 과학 지진아가 책장 넘어가는 걸 아쉬워할 만큼 문장은 유려하고 고민은 깊으며 생각은 자유롭다.
라이트먼은 과학자로서 이 세계를 최대한 과학적으로 설명하지만, 인문학자로서 그는 이 설명이 담아내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세상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 우주만이 아니라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우주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리처드 도킨스가 과학적 논증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에 반대한다. “우리 우주를 창조한 것이 무엇인지 과학은 결코 알아낼 수 없다”고 확언하면서.
그가 신앙고백을 한다고 오해하지는 마시라. 그는 무신론자다. 일부 과학자를 포함한 유신론자들은, 신이 있어 우리 우주를 지금처럼 생명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는 ‘지적 설계론’을 주장하지만 라이트먼은 최신 물리학의 다중우주 개념을 통해 이를 반박한다. 다중우주론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우주 중 하나이며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한마디로, “우리 우주가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은 그저 우리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 때문”일 뿐, 신의 설계나 의도가 아니란 것.
문제는 이 우연성을 인정하는 순간 신의 존재만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속성을 기본 원리로 설명하려는 물리학의 오랜 꿈도 부정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물리학자들은 “이 우주가 우연의 결과물이며 계산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아가 “우리에겐 다른 우주를 관찰할 방법도, 그 존재를 입증할 방법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많은 물리학자들에겐 심란한 일인데 라이트먼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다. 과학자인 그는 물리적 우주의 모든 속성과 사건은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과학의 핵심교리를 지지하고, 인간이 물리적 세상의 모든 지식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는 종교적 믿음이 그렇듯 과학적 믿음에도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즉, “과학이 지식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아니며 세상엔 답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는 것이다.
살아갈수록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아서 막막했는데 “모든 해답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 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해준 이가 있어 힘이 난다. 아마 자신의 답만이 정답이라 믿는 자들은 짐작도 못할 것이다. “잠긴 문처럼 질문 그 자체를 사랑”하며 사는 기쁨을.
살아갈수록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아서 막막했는데 “모든 해답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 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해준 이가 있어 힘이 난다. 아마 자신의 답만이 정답이라 믿는 자들은 짐작도 못할 것이다. “잠긴 문처럼 질문 그 자체를 사랑”하며 사는 기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