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칼럼

우리에게 내일이 있을까?

노바리 2016. 3. 25. 15:30



바둑도 컴퓨터도 모르는 터라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대결을 한다고 해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벌어지는 대국을 보니, 놀라운 사고력에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까지 갖춘 인공지능에 맞서 인간이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착잡하더군요. 혹자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대단해도 데이터를 학습해 최적치를 선택하는 것일 뿐 인간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런 말로 위안을 삼을 단계는 이미 지난 것 같습니다.


컴퓨터 학자 에츠허르 데이크스트라는 “기계가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은 잠수함이 항해를 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기계가 인간처럼 생각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 인간보다 ‘더 싸고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해낸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요. 더구나 최근 IBM의 최고기술책임자 롭 하이가 밝힌 바에 따르면, 트윗 글을 읽고 상대의 감정과 성격까지 파악하는 인공지능 서비스가 곧 나온다고 하니 마음을 읽고 소통하는 능력에서조차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 날이 멀지 않은 듯합니다.


이대로라면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30년 안에 일자리의 절반 이상을 기계가 대신할 겁니다. 이미 과일농장에서는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딸기를 따고 있고, 고속도로에서는 무인자동차가 시험주행을 마쳤습니다. 육체노동만이 아닙니다. 주식시장의 초단타매매 프로그램,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 진단과 치료법을 제시하는 의료 인공지능의 등장은 펀드매니저, 변호사, 의사처럼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종 역시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기술이 발전하면서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나타나는 일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인간은 필요 없다>의 저자 제리 카플란이 지적하듯 이런 변화가 인간이 예측하고 적응하기에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이루어진다는 점이지요. 인공지능학자이며 법정보학 교수고 스타트업 기업가인 카플란은, 그 자신 신기술을 활용해 부를 쌓아온 만큼 기술 발전의 유용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가령 무인자동차의 발달은 음주운전이나 노령운전 같은 문제를 해소하고, 교통사고와 자동차 보유대수를 줄여 사고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환경오염을 감소시킬 것입니다. 운전기사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대신 컴퓨터를 활용한 자동차관리원 같은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므로, 기술 발전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면서 ‘직업대출’ 같은 제도를 통해 사람들이 새 직업에 적응할 수 있게 하면 되지요.


결국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 발전으로 인한 성과를 공평하게 나누는 겁니다. 카플란은 지금처럼 상위 1%가 독식하는 사회가 계속된다면 미래는 자산 대 사람의 투쟁이 될 것이며 결국은 모두 희생되고 말 거라고 경고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개인도 기업도 정부도 경제적 이득만을 좇아 인공지능 기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인조인간이 사람을 지배하는 영화 속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될 위험성이 커졌다는 점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무료배송 같은 눈앞의 소소한 이득에 혹해 신기술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사이 인간의 능력과 권한은 급속히 축소되고 있으며, 머잖아 인공지능이 법적 도덕적 주체로써 세상을 좌우할 거라고 예견합니다. 설마 그럴까 싶지만, 중세에는 동물이 법적 책임을 졌고 현대엔 기업이 법‘인격’으로 권한과 책임을 행사한다는 걸 알면 인공지능이 인격으로 등장하는 것도 시간문제임을 깨닫게 됩니다. 더구나 기술을 개발한 프로그래머들조차 컴퓨터가 무엇을 어떻게 아는지 모른다는 걸 떠올리면 인간이 창조주로써 기계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근거 없는 낙관인지 모릅니다.


따라서 카플란의 말처럼 더 늦기 전에 소득불평등을 줄이고 인공지능의 활용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인간에게 미래는 없을 겁니다. 빌 게이츠조차 “인공지능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할 정도니까요. 한데 한국의 학부모들은 아직도 아이를 변호사와 의사로 키우려 기를 쓰고, 정부는 1조원의 투자로 장밋빛 미래를 만들겠다고 하니 정말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지, 인공지능에게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