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애, <시인의 집>
한밤중 문득 잠이 깨는 일이 잦다. 한낮보다 선명한 정신에 깃드는 캄캄한 어둠. 지난 세월의 부끄러움과 오는 시간의 막막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다. 과거는 물론 예정된 미래조차. 그런 밤들이 거듭되매 답이 없다 여겼다. 허무가 진리이지 무엇이 더 있으랴, 하였다. 잠깐 더위를 식히려 들른 서점에서 <시인의 집>을 만나기 전까지.
시인이자 독문학자인 전영애가 파울 첼란, 라이너 마리아 릴케, 하인리히 하이네, 라이너 쿤체 등 13인의 시인의 자취를 찾아 쓴 <시인의 집>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책장을 덮었는지 모른다. 거듭 절망했으되 허무는 아니었던 시인들의 생애와, 그 생애의 발자국들을 조심스런 붓질로 되살려낸 필자의 간절함에 눈이 뜨거워져서 눈두덩에 손바닥을 얹은 채 숨을 고르곤 하였다.
에스토니아에서 시작해, 괴테의 마지막 열정이 머문 마리엔바트를 거쳐 “마침내 찾은” 필자 자신의 거처에서 끝이 나는, 근 500쪽에 달하는 긴 여정을 일목요연하게 간추릴 재간이 내겐 없다. 소개된 시인들의 시는 물론이고, 쉼표조차 의미가 되는 필자의 문장은 어느 하나 시 아닌 것이 없는데 무엇을 빼고 무엇을 더하랴. 그 먼 길을 요약할 수 있는 것은 시뿐이다. “한 생애의 발자국들 위에 내 발자국을 얹어본다”는 파울 첼란의 시구 그대로, 시인들은 서로의 발자국에 발자국을 얹으며 생애를 견디었다.
그렇다. <시인의 집>은 삶이란 무엇보다 견디는 것임을 보여준다. 행복해지라고, 견디지 말고 즐기라고 권하는 세태에 웬 시대착오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전장의 참혹을 차마 볼 수 없어 스물일곱에 요절한 트라클에게,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왔으나 끝내 병든 몸을 센 강에 던진 첼란에게, 지붕 밑 방에서 36년을 광기 속에 보낸 횔덜린에게, 삶은 견디는 것이고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모든 것을 누린 듯했던 괴테조차 생애 마지막 사랑을 잃고 절규하지 않았던가. “나를 여기 버려두어라, 함께 길 가던 이여!” 하고. 횔덜린은 그런 것이 ‘인생행로’라고 말한다. 삶은 그렇게 “보다 큰 것을 뜻하였”던 우리의 꿈을 꺾고 우리의 몸을 “고통으로 굽혀놓는다”고. 그러므로 “모든 것에 감사”하되, 또한 모든 것을 버리고 “불쑥 떠나는 자유를 이해하라”고.
큰 고통을 겪고도 체념의 금언이 아니라 ‘떠나는 자유’를 노래한 시인이 내 앞의 어둠을 밀어낸다. “사람이 죽으면, 오랫동안/ 무덤 속에 누워 있어야 한다. 나는 두렵다”고 고백한 하이네의 정직이 두려움을 받아들이게 한다. “인생의 긴 여정은 오로지 고달픔”이지만 거기서 만나는 “행복한 순간, 그 백분의 일 초를 위해 일하고 살고 생각해야 한다”는 쿤체의 따스한 위로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먼저 절망한 그들 덕분에, 먼 곳으로부터 와 닿은 그들의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얹으며 감히 꿈꾼다. 언젠가는 “슬픔이 저처럼 꼿꼿할 수 있는가” 자문했던 릴케처럼 꼿꼿하게 슬픔을 견디고 자유에 이를 수도 있으리라.
문학은 이런 것이다. 생을 건 물음과 물음을 감당하는 온 생애의 헌신. 거기 어디 거짓 문장이 놓일 자리가 있는가. 당연하지만 오래 잊혔던 그 진실을 일깨워준 책을 고마운 마음으로 읽고 또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