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파리, 로마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노바리 2015. 6. 21. 15:34

내가 참고한 여행책자 <이지유럽4개국>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문제는 책에서 파리와 로마에 가면 소매치기들을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 탓에 가기 전부터 바싹 긴장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점. 결론부터 말하면 파리는 걱정보다 덜했고 로마는 걱정할 만했다.

파리에서는 첫날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만났다. 오벨리스크와 세느강을 보고 기분 좋게 호텔로 돌아오면서 골목으로 들어선 게 사단이었다. 날은 환했지만 -사실 시간으로 따지면 한밤이었다- 널찍한 골목은 사람이 없어서 아차 싶었는데, 그때 아주 예쁜 아가씨가 뒤에서 나타나더니 지도를 흔들며 "뮤제 오르세 뮤제 오르세"를 외쳤다. 오르세 미술관이 어디냐고 묻는 것인데, 우스운 것은 프랑스말도 못하는 한눈에 봐도 관광객이 분명한 아시아인에게 프랑스어로 그걸 물었다는 것. 아직 현지적응이 안 된 탓에 우리는 처음엔 이상한 걸 눈치채지 못하고 "미안하다, 우린 모른다"며 진심 미안해했다.  그런데도 이 아가씨와 동행인 다른 아가씨는 너덜너덜해진 커다란 지도를 들이밀며 계속 "뮤제 오르세"를 되뇌었고 내가 다시 미안하다고 하는 순간, 남편이 "어?" 하더니 "이거 아닌데" 하는 것이었다. 순간 동정심을 자극하던 예쁜 아가씨의 표정이 '재수 없음'으로 확 바뀌더니 두 아가씨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지도를 들이밀면서 다른 손으로는 복대를 열려다가 남편에게 들킨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파리의 집시 소매치기를 직접 경험하고 처음엔 황당하고 우습고 별별 일을 다 겪는구나 했는데, 이튿날부터는 사람을 은근히 경계하게 되었다. 

 

그게 심해진 것은 로마에 가서였다. 책에 적힌 주의사항을 읽다보니 가기 전부터 정나미가 떨어질 지경이었는데 가서는 정말 하루에 한두 번은 꼭 소매치기를 만났다. 숙소가 소매치기 소굴이랄 수 있는 테르미니역 근처였고, 우리가 가는 곳이 죄다 유명한 관광지였으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마지막날 역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기 안은 아줌마와 아가씨로 구성된 여성 소매치기단의 최후 공격까지 받고난 뒤엔 정말이지 싫은 기분이었다. 다행히 동전 한 닢 잃지 않았지만. 우리가 겪은 소매치기 사례들을 정리하자면,

 

첫째, 포로 로마노를 다 보고 나오는 계단을 올라가는데 자꾸 뒷사람의 팔이 내 팔에 부딪혔다. 유럽인들은 몸이 닿는 것을 극도로 조심한다는 걸 그때쯤엔 알게 되었기 때문에 좀 이상했다. 부딪쳐서 뒤를 돌아보니 스카프를 손에 든 여자가 미안한 듯 웃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오르는데 또 팔이 닿았다.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려는데 남편이 "가방 좀 봐봐, 이상해"하는 것이엇다. 그래서 보니 가방이 반쯤 열려 있는 게 아닌가! 얼른 올라와 가방을 살피고 아래를 보니 뒤에서 나를 자극했던 여자가 남자와 어느새 밑으로 내려가 있었다. 남편이 쟤네들이라며 어떻게 하는지 보자 해서 지켜보니 한국인인 듯한 아가씨들 대여섯 명이 모인 쪽으로 가서 한 아가씨의 가방을 여는 것이었다. 남자가 막 지갑을 꺼내려는 순간, 여자가 철창 너머에서 노려보고 있는 우리를 발견했고 둘은 급히 자리를 떴다. 그 아가씨는 모르겠지, 우리 덕분에 지갑을 지킨 것을ㅎㅎ 

그 다음에도 겪어보니 소매치기들은 보통 스카프, 우산 등을 들고 다니면서 제 손놀림을 감췄다. 

둘째, 몸을 부딪치는 사람은 모두가 요주의 인물. 만원버스 안에서 내가 앞으로 멘 핸드백이 활짝 벌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옆에 선 여자가 내 목과 가슴을 누르듯이 하며 봉을 잡는 것이었다. 워낙 만원버스라 할 수 없겠지 하며 이해했는데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주의를 돌리며 도둑질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날 엘리베이터에서 여자가 갑자기 떠밀린 듯이 훅 내게로 육박해왔을 때 순간적으로 이건 이상하다!고 낌새를 챌 수 있었다. 내가 경계를 늦추지 않자 뒤에 서있던 아기 안은 여자가 "우치타 우치타" 하며 우리의 시선을 끌었는데 물론 모두 한패였다. 

로마에서는 거리에서 동냥을 하는 거지와 소매치기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났는데 가만 보니 그들의 주요타깃이 아시아인이었다. 한눈에 관광객인 걸 알 수 있고 도둑을 맞아도 신고가 어렵다는 걸 알고 하는 짓인데, 그래서 더욱 불쾌한 기분이었다. 봉이 된 것 같달까.

 그나마 버스 안에서 만난 한국 남학생들 이야기로는 "지금 로마가 제일 안전할 때"라고. 우리가 갔던 6월초에 밀라노 엑스포가 있었는데 그래서 많은 소매치기들이 대거 원정을 떠났단다. 아마 우리가 숱한 공격(?)에도 꿋꿋이 지갑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 덕분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만난 도둑들은 솜씨가 좀 떨어지는 아마추어였던 듯. 

 

그나저나 최악의 인물은 따로 있었다. 열흘간의 여행 중 최악의 인물은 바티칸 베드로대성당의 경비였다. 출발하는 날 아침 일찍 피에타상을 보기 위해 베드로대성당을 찾았다. 뙤약볕에서 40여 분을 기다려 마침내 입장하게 되었다. 들어가기 전에 간단한 복장검사와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배가 불쑥 나온 중년의 경비가 갑자기 우리 앞에 선 청년을 확 떠밀치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우리까지 뒤로 떠밀렸다. 너무 놀라고 어이가 없어서 경비를 쳐다봤다. 당연히 우리에게 사과를 하리라 생각하면서. 웬걸, 이 남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중동계인지 남유럽인지 아무튼 약간 까무잡잡한 청년이었는데 벨트를 안 풀었다고 그 야단을 하는 것이었다. 두 손바닥으로 청년의 가슴을 치고 욕설이나 다름없는 고함을 지르며 그야말로 그런 유세가 없다. 청년만이 아니라 남편에게도 으르딱딱거리는데 정말이지 교황이 백날 좋은 말하면 뭐하나 싶었다. 교황의 권세를 등에 엎고 그 앞마당에서 이 x랄을 하는데! (정말 그 꼴을 표현하자면 x랄이라고밖에는 못하겠다) 요즘 하도 살기가 힘들어서 신앙의 힘을 빌려볼까 했던 마음이 바람같이 사라지며, 무신론자이길 얼마나 다행이냐 했다. 

피에타상은 섬세하고 아름다웠지만 물론 특별한 감동이나 숭고함 같은 건 느낄 수 없었다. 아무리 성스럽고 뛰어난 예술이라 해도 이런 악의 앞에서는 무력함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아무튼 로마를 다니면서 느낀 것은, 이 경비처럼 완장을 찬 이들이 유독 불친절하고 기세등등하다는 것이었다. 버스 검표원 아가씨가 버스 기사에게 거들먹거리고 우리에게도 불친절하기 이를 데 없는 것도 그렇고, 마지막에 공항에서 만난 검색요원들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일반 시민들은 아주 친절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기분 나쁜 건 이들이 백인들에게는 안 그러고 우리 같은 유색인들에게 유달리 그런다는 점. 공항에서도 한국 아주머니 한분이 온몸을 구석구석 훑어내리는 봉변을 오래 당하더니 아저씨 한 분은 가방을 털고 또 터는 수모를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20분은 족히 당했다. 우리 앞에 섰던 유색인 남자도 몹시 무례한 검색을 당하고. 하지만 백인이 그런 꼴을 당하는 건 본 적이 없다. 똑같이 벨트를 안 풀었어도 백인에게는 정중히 부탁하는 걸 보고 인종차별이란 게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도 조금 그런 느낌을 받긴 했는데, 아무튼 밖에서 이런 걸 겪는 한국인들이 제 나라 안에서는 또 다른 아시아인들이나 유색인을 업신 여기는 건 그야말로 소가 웃을 일이다. 진짜 내가 약자고, 약자들끼리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는 걸 재삼 깨닫고 다짐했다.  

 

 

               

 

포로 로마노 안에 있는 노예 혹은 죄수를 가둬둔 곳(왼쪽). 카이사르의 시신을 화장했다는 화장터.

 

 

 

 

 

 

 

대성당을 지키는 근위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