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립미술관 소장전
부연 일요일, 삼일절이라고 도서관도 쉬고 겸사겸사 정동길로 갔다. 전광수 커피집에서 토스트에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나왔는데 남편이 미술관에 갈까 한다. 지난번 아프리카 전시회가 재미있었던 까닭이다. 나는 시큰둥했지만 가보기나 하자 했다. 소장전을 한다고 써 있다. 별 기대없었다. 그런데 한국의 현대미술 작품들이 전시된 공간은 재미있고 새롭고 활기찼다.
특히 한기창의 <흔적III> 앞에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주로 재기발랄하거나 소재의 새로움으로 눈길을 끈 것과 달리 세월호를 깊이 고민한 그의 작품은 현대미술이란 게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근래 한국 미술이 상업적이고 키치적인 데 불만이 많아 멀리했었는데 이 작픔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월호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밴 흡착포에 시커먼 기름으로 그린 새 한 마리. 그걸 보고 있으려니 횃대에 앉은 그 새가 훨훨 날 수 있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이 된다.
마음이 열리자 다른 작품들도 더 적극적으로 감상하게 되었다. 글씨 그림이랄 수 있는 <말과 활>도 재미있고 원근법을 비튼 송은영 작가의 <18>도 눈길을 끈다. 그리고 실리콘으로 만든 이병호의 <깊은 숨>(사진) 앞에선 처음엔 뭐지? 했다가 아주 느리게 변하는 모습에 와! 하고 놀랐다. 성형외과, 피부과 앞에 이 작품을 전시하면 손님이 좀 줄지 않을까? ㅎㅎ
서울 시립미술관 전시가 정말 좋아졌다. 벽을 액자처럼 처리한 공간도 그렇고, 작품 수준도.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된다면 세금 내는 시민으로 보람이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