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연재칼럼

윤동주, 이바라기 노리코

노바리 2015. 2. 17. 17:23

 

216일은 윤동주 시인의 70주기입니다. 이를 기념해 지금  일본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추모회와 유고 유품  전시회, 시비 건립 등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합니다. 그 소식을 접하고 아뿔싸! 하는 마음에 뒤늦게 작가 송우혜의 노작(勞作) <윤동주 평전>을 펼쳤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시인이지만 그의 해사한 얼굴 뒤에 그토록 강한 의지와 타협을 모르는 정신이 있었다니, 새삼 놀랍습니다. 어쩌다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낙인 찍혀 옥사한 줄 알았는데 뚜렷한 반일의식을 가지고 꾸준히 민족운동의 길을 모색했다는 것을 알고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그의 시와 삶을 접하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바랐던 젊은 날이 떠오릅니다. 부끄러웠습니다. 학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을 하고서 24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든가”(‘참회록에서)라며 스스로의 욕됨을 참회했던 저 형형한 청춘을 잊고 있었던 것이 부끄럽고, 그 형형함을 감당할 수 없어 그의 시를 오래 덮어두고 있었던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한때 애송하던 윤동주의 시를 멀리했던 것은, 부끄러운 나를 마주하기 싫어서였습니다. 마땅히 욕됨을 느껴야 할 시간들을 그럭저럭 살아내고 그래도 크게 잘못 산 것은 아니지 않느냐 짐짓 태연한 척을 하려는데 그의 시가, 그 시를 고스란히 살아낸 그의 삶이 그런 변명을 허락하지 않기에 견딜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의 시를 읽는 이는 누구나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윤동주가 경외한 시인 정지용은 죽은 시인의 시집에 붙여 아직 무릎을 꿇을 만한 기력이 남았기에 나는 붓을 들어 시인 윤동주의 유고에 분향하노라고 참담한 심정을 고백했던 것이며, 이순(耳順)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시인 이성선은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별을 보며에서) 하고 토로했던 것이지요.

 

일본인들이 70년 전에 죽은 이국의 시인을 잊지 않고 기리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스스로가 저지른 잘못을 직시하고 더는 부끄러운 역사를 살지 않기 위해 거울을 닦듯 그의 시를 읽는 거지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시로 유명한 이바라기 노리코는 그런 마음으로 윤동주를 읽고, 그렇게 읽어야 한다고 일본인들을 깨우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나이 오십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한국어를 만나고 윤동주를 만나고 이웃나라의 통한과 아름다움을 만난 뒤 그 사무치는 마음을 이렇게 썼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렇게 노래하고

용감하게 한글로 시를 썼던

당신의 젊음이 눈부시고 그리고 애처롭습니다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달빛처럼 맑은 시 몇 편인가를

더듬거리는 발음으로 읽어보지만

당신은 싱긋도 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

앞으로

어디까지 더 갈 수 있을는지요 (‘이웃나라 말의 숲중에서)

 

며칠 전 그녀가 쓴 <한글로의 여행>에 실린 윤동주에 관한 에세이를 다시 읽다가 그 마음을 더듬게 하는 한 대목에서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시인의 동생 윤일주 씨를 만난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그가 요즘 아버지를 자주 생각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형의 유골을 품고 후쿠오카에서 부산, 그리고 기차에 흔들리며 북간도 집까지 돌아오셨을까 하고.” 라며 담담하게 말할 때 그 어떤 격렬한 탄핵과 지탄보다도 강하게 내 마음을 찔렀다.”고 고백합니다.

일본에서 만주까지 죽은 아들을 품고 갔던 아버지의 고통을 상상하면서 그녀는 깊은 슬픔과 죄책감을 느낍니다때문에녀는 윤동주가 일본 검찰의 손에 살해당했으며 일본인 자신이 그 죽음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고 단언합니다. 그 고통을 알기에 죄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려는 것이지요.

타자의 고통을 상상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숭고한 능력입니다. 한일 두 나라의 시인이 보여주었듯이, 사람은 무엇보다 겪지 않은 슬픔을 나눌 수 있기에 사람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남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다가 죽는 것은 당연한 일. 어렵지만 그것이 옳고 마땅한 줄을 알기에 그리 살자고 다짐합니다. 영원히 살아있는 죽은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