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트라우마를 대하는 노르웨이와 한국의 차이
아주 가끔 출판사들이 신간을 보내준다. 고마운 일이라 관심이 없던 책이라도 어지간하면 읽으려 한다. 그런데 요즘은 오는 책들이 대부분 심리학서적이라 겹치는 내용들이 많다. 심리학 책이 많이 팔린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편중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쏟아진 옷장을 정리하며>라는 책은 받고 관심이 생겼다. 무엇보다 필자가 국제적인 트라우마 전문가로 광산 붕괴 사고나 총기 난사 사건의 후속 치료팀으로 활동했었다는 점이 관심을 끌었다.
책의 앞부분은 특별한 느낌이 없었다. 눈길을 끈 것은 3부의 '트라우마가 전 사회에 엄습할 때'라는 장이었다. 여기에 집단 트라우마를 바람직하게 극복한 사례로 2011년 오슬로 폭탄테러와 뒤이은 우토야 섬 총기난사사건을 겪은 노르웨이가 소개되는데 정말 놀라웠다.
나도 극우주의자가 청소년들에게 총기를 난사한 우토야 섬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는데, 사건이 일어난 날 저녁 노르웨이 총리가 한 첫마디는 "아무도 노르웨이인들을 무력으로 침묵하게 할 수 없"으며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은 계속될 거라는 당찬 선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장례식 이후 전국에서 화합을 촉구하는 모임과 침묵 시위, 폭력 반대집회가 이어졌고, 도시와 시골 모두에서 정기적인 묵념시간을 갖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에게 관심을 표했다고 한다. 또 법정에서는 모든 증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에 큰 비중을 두고 많은 시간을 할애했단다. 법정이 일종의 치료공간이 된 것이다. 1주년 기념일에 총리는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 앞에서 "죽은 자들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누립시다." "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사건 이후 노르웨이 청년들은 서로 다른 종교와 정당들에 더 열린 태도로 대하는 노력을 전개했다고 한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지 반 년도 되지 않아 언제까지 그 얘길 할 거냐, 지겹지도 않냐고 하는 한국 사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노르웨이의 사례를 보면서 얼마나 배가 아프고 속이 쓰리던지.
개개인이 심리적으로 건강해지려면 심리학 책을 읽기에 앞서 사회적으로 타인과 공감하고 고통을 함께하는 것부터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