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사코, <저널리즘>, 씨앗을뿌리는사람들, 2014
조 사코는 만화로 기사를 쓰는 ‘만화 저널리즘’의 선구자다. 만화가가 현실 문제를 다루는 경우는 있었어도 기자가 만화로 뉴스를 보도하는 것은 그가 처음이다. 왜 만화일까? 사코는 만화가 독자의 무의식까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본능적인 매체”이며, 시간적 한계를 넘어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보다 유기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말한다. 맞다.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나는 그의 책 <팔레스타인>과 <안전지대 고라즈데>를 읽었을 때의 느낌을 기억한다. 메모를 안 하면 무슨 책을 읽었는지도 모르는 내가 메모할 수도 없는 만화책의 어떤 장면과 어두운 흑백만화의 분위기를 여전히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의 말처럼 만화가 본능적인 매체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사코의 만화 기사는 만화가 ‘본능적’이되 ‘객관적인’ 매체임을 보여준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독자로 하여금 기자의 주관성을 의식하게 함으로써 객관적 진실을 고민하게 하는 매체라 할 수 있다. 사진의 경우, 무작위의 현실 속에서 카메라가 의도적으로 택한 영상임에도 독자가 찍는 이의 시선을 의식하고 작위를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반면 만화는 작위가 분명히 드러난다. 사코는 그것을 잘 알며 취재하고 보도하는 내내 그 점을 의식한다.
그의 만화에 언제나 그 자신이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다. 안경을 쓴 약간 부루퉁한 모습으로 팔레스타인인, 체첸 난민, 인도 빈민, 이라크 파병 군인, 아프리카 난민 들을 취재하는 그는 때론 성나 보이고 때론 난감해 보이며 때론 무력하고 당황한 듯 보인다. 눈동자 없이 그려진 텅 빈 안경알은 저널리즘이 지향해야 할 선입견 없는 투명한 시선을 반영함과 동시에,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하는 그의 당혹감을 드러낸다. 그는 이런 식으로 취재원들과 영향을 주고받는 자신을 드러내며, 사실과 주관이 명료하게 구분되거나 상호배타적이진 않음을 보여준다.
전 세계 분쟁지역을 취재한 근작 <저널리즘>의 서문에서 사코는 ‘균형’을 맹목적으로 고수하는 미국 언론을 비판하면서, 진실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이 아니며 기자는 균형이란 미명하에 진실을 흐릴 것이 아니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헤쳐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 책을 번역한 여러 기자들 중 한 명인 정원식 기자와 나눈 서면인터뷰에서는, 저널리즘이란 정치인의 말을 받아 적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현실과 비교하는 것”이며, “저널리즘의 최고 목표는 힘센 자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확언한다.
그는 언론이 무시하고 비하하는 이들에 집중하지만 힘없는 그들이 늘 옳거나 착한 것은 아님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책에 실린 아프리카 이민자 문제를 다룬 ‘이민’ 기사는 이처럼 뒤얽힌 현실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기가 얼마나 힘든지 새삼 깨닫게 한다. 해결책이 있을까? <저널리즘>은 답보다 문제를 아는 게 먼저라고 말한다. 그것이 언론의 사명이라고. 한쪽을 편들거나 양쪽을 비난하는 어설픈 훈수 두기가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