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북극을 꿈꾼다!

노바리 2014. 7. 13. 11:42

배리 로페즈, <북극을 꿈꾸다>, 봄날의책, 2014

 

순전히 날씨 때문이었다. 평년 기온을 웃도는 무더위에 시달리다보니 <북극을 꿈꾸다>라는 제목이 남 얘기 같지 않았다. 그래서 집어 든 책의 뒤표지에서 “인간은 누구나 생에 한 번쯤 기억된 대지에 마음을 집중해야만 한다.”라는 문장을 보았다. 눈을 사로잡은 그 문장은 책의 제사(題辭)였고 빙산이었다. 그 빙산 아래 깊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들로 이루어진 550쪽의 빙하가 감춰져 있었다.

 

캐나다 북극지역을 탐사한 현장생물학자 배리 로페즈가 쓴 <북극을 꿈꾸다>는 북극의 자연과 문화에 관한 성실한 관찰기이고, 미지의 대상에 대한 심오한 사유가 담긴 철학서이며, 연인의 귀에 들려주고 싶은 그윽한 문장들로 가득한 에세이이다. 하지만 읽기 쉽지는 않다. 어렵고 현학적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호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광지를 둘러보는 여행객의 부산한 걸음으로는 북극의 참모습을 알 수 없듯이, 이 책을 읽을 때는 북극의 얼음 위를 걷듯이 사방에 주의를 기울이며 천천히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얼음이 다 같은 얼음이 아니며, 툰드라가 불모의 황무지가 아니며, 북극곰은 콜라 광고에 나오는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며, 우리는 그 모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뼛속까지 서늘해진다.

 

로페즈는 북극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침엔 해가 뜨고 밤이면 해가 지는 것은 온대의 진리일 뿐, 빛과 어둠의 땅 북극의 진리는 아니다. 거기서 태양은 한밤중에도 빛나며 덕분에 새들은 부화하여 남쪽으로 날아간다. 로페즈는 그 햇빛을 기려 말한다. “얼마나 너그러운가. 겨울의 증거를 웅변적으로 드러내는 땅에 사방으로 넘쳐흐르는 연민이라니.”

 

동물의 행동은 전부 본능에 의한 것이라고 여기는 오랜 휴머니즘도 북극에선 의심스럽다. 200만 년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은 사향소를 보면서 로페즈는 이 ‘개성’적인 동물의 진화와 생존을 본능으로만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며, 물범을 잡기 위해 서너 시간을 기다리는 늙은 북극곰의 ‘깊은 인내’에서 본능을 넘어선 학습의 효과를 발견한다. 또한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조건으로만 여겼던 눈과 얼음이 동물들의 은신처로, 식물의 온실로, 물범과 바다코끼리의 쉼터요 새끼를 낳는 해산실로 쓰이는 것을 보며 북극 동식물의 삶을 결정하는 필수 구성요소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생물학·지리학·역사학·언어학·미술사를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에도 불구하고 이 낯선 대지에 대한 무지를 고백하며, 이 땅과 이 땅의 존재들에 대한 한없는 경외감을 감추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본 모든 것에 감사하며 두뿔종다리에게 절하고, “사람은 모순의 한가운데를 살아내야 한다.”고 가르쳐준 대지에 절하고, 정치도 종교도 경제학도 모르는 존재들에게 절하고, 생명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장소에 허리 굽혀 절한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그에게 절한다. 더위를 잊게 해주고 무지를 일깨워준 데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