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짧고 불만스러운 독후 소감

노바리 2014. 1. 28. 13:52

몇 달째 앨리스 먼로에 빠져 있다. 맨처음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떠남>이 참 좋았으나 아쉽게 원작에 실린 3편이 누락되어 있어서 사지 않았다. 1월에 완역본이 새로 나온다 해서. 새 번역본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교보로 달려갔다. <런어웨이>라는 영어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이 일단 맘에 걸렸다. 지난번 <디어 라이프>도 그랬지만, 이건 어지간한 영어는 독자들이 다 이해한다는 암묵적 전제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일본어와 영어가 특히 이런 경우가 많은데, 이날 서점에서 나카지마 아츠시의 소설집이 나온 걸 보고 반가웠다가 일본어 표현을 한국어인 양 그대로 옮겨놓은 걸 보고 기분이 나빠졌다.) 사실 우리말로 옮기기 참 애매하고 어려운 것이야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어차피 번역이란 게 참 애매하고 어려운 문장을 옮기겠다는 무모함을 동반하는 것 아닌가. 

아무튼 그 불만 때문인지 책을 펼쳐 훑어보는데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 지난번 <떠남>은 제목의 번역에 동의하진 않았어도 그 고민을 이해하면서 참 잘 읽었다. 먼로의 단순명료한 듯하면서도 행간에 많은 이야기가 숨은 문장을 번역자가 섬세하게 옮긴 덕에 먼로의 책이란 책은 다 찾아 읽게 되었는데... 똑같은 작품을 어떻게 옮겼는지 두 책을 비교하니 더욱 아쉬움이 크다. 새로 나온 책이 더 좋기를 바랐는데. 결국 사려고 맘먹고 갔으나 그냥 빈손으로 왔다.

먼로의 책은 현재 5권이 번역되어 나왔는데 번역자가 다 다르다. 그게 아쉬운 점도 있지만 덕분에 번역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먼로의 초기작인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다른 책 두 권을 읽고 나서 읽었는데 번역자의 개성이 너무 도드라진 문장 때문에 먼로의 글을 읽는 것 같지 않았다. 이번에 <런어에이> 대신 먼로의 단편들을 모은 <selected stories>를 사서 직접 먼로의 문장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행복한...>의 문장은 과한 느낌이다. 어쨌거나 원서를 사긴 했는데 영어는 원체 부족한데다 워낙 오랜만에 영어책을 읽으니 모르는 단어 속출. 그래도 책을 반으로 뚝 갈라 들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펼쳐본다. 번역의 수고를 재삼 재사 되새기면서 읽는다. 그나저나 먼로 덕분에 때 아닌 영어 공부까지 하게 되었다. 댕큐, 앨리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하드커버의 경우 겉표지를 벗기기 때문에 어떤 출판사들 책은 표지에만 저자와 옮긴이에 관한 정보가 있어 답답할 때가 많다. 민음사 책은 열이면 열 다 그렇다. 요즘은 대개의 출판사들이 서지사항을 쓰는 페이지에 이런 정보를 같이 적어두는데 민음사는 요지부동이다. 심지어 민음사의 임프린트인 반비 책도 그렇다. 얼마 전엔 책을 읽다가 역사에 관한 밀란 쿤데라의 논평이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보고 민음사에서 나온 전집의 에세이 편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이 전집에는 도통 아무 서지정보가 없다. 옮긴이 후기도 없고 저자의 약력이나 저서목록 같은, 이런 전집에 흔히 실리는 정보들이 하나도 없다. 쿤데라의 소설도 좋았고 에세이도 재미있었으나 책은 절대 사지 않기로 했다. 출판일을 할 때도 느꼈지만 민음사 편집자들은 책을 편하게 만드는 것 같다. 하긴 그래도 팔리는 저자와 목록들을 갖고 있으니까.